
[촌부의 단상]용건만 간단히...
오랜만에 친구와 꽤나 긴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옛날 생각났다.
"용건만 간단히"라는 말이...
아마 지금은 이런 표어는 없겠지?
언제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예전 공중전화 박스에는
꼭 이 말이 적혀 있었고 심지어 가정용 전화기 앞쪽의
번호가 적혀있는 원 안에도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꿔놓은 요즘 이런 말은 생소하고 어색하기
까지 하다. 그 시절에는 전화기를 붙잡고 오래 통화를
한다는 건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공중전화 박스 앞에는 동전을 들고 줄을 서있는 것은
아주 흔한 광경이었다. 알기로 한번 하는 통화는 3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제한 시간이 다 되어가면
통화 중에 동전을 더 넣어 시간을 늘려 통화를 했었다.
오래 통화를 하면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 당시의 풍속도라서 기억이 새롭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못하고 사는 세상에
이런 모습은 볼 수도 없으며, "용건만 간단히"란 말은
사용도 하지 않을 뿐더러 왜 그래야만 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20~30대의 젊은이들은
더더구나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전화 시설이 부족하여 급한 일도 전화를 못하고 대신
우체국에 달려가서 전보를 쳐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전보도 길면 비용이 많이 들어 아주 간단 명료하게
작성을 해야 했다. 가장 많은 것이 경조사 전보가 아니
었나 싶다. 예를 들어 "누구 사망, 몇일 발인" 이 정도
였고 입학 시험이나 취업 합격 소식도 전보로 대신을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참으로 요긴한 통신 수단이었던 것이었다.
기억하기로 그 당시에는 청색전화와 백색전화로 구분
하는 가정용 전화가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전화 시설
부족으로 인하여 전화를 놓기가 어려웠던 때 1970년
9월 1일 이후 체신관서에서 승낙을 받아 가입을 해야
했고 사용권을 남에게 양도할 수없는 전화를 청색전화,
사용권을 남에게 넘겨줄 수 있던 전화를 백색전화라고
하였는데 전화기 색깔로 구분한 것이 아니고 체신관서
가입 원장(原帳)이 청색이냐 백색이냐로 구분하여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전화에 얽힌 웃지못할 사연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서울에서 전셋집에 살던 때의 이야기이다. 주인집의
전화번호를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간혹 전화가 오면
주인집에서 "미경이네 전화 받아요!"라고 하면 가서
받곤 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아마 우리 막내
아우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지 아님 저학년 때
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주인집 딸내미와 동갑인
막내는 그 집에서 자주 놀았다. 특히 TV를 보기 위해
갔었는데 전화기가 그렇게 신기했던 모양이라 만져
보고 수화기를 들어도 보고 했던 모양인데 주인집의
딸내미가 빼앗고 TV도 보지말고 가라고 하여 울면서
집에 건너와 TV도 사고 전화도 놓으면 안되냐고 하여
부모님 속을 많이 상하게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추석 가까운 무렵이고 상여금을 받아오던 날이
바로 그날이라 남동생과 나가 TV를 사오고 어머니께
당장 내일 전화 신청을 하라고 하여 며칠 뒤에 전화가
개통되었다. 막내 아우는 어린 나이에 TV에서 하는
만화영화가 보고싶어 그때마다 주인집 딸내미 유세에
비위를 맞춰 가면서 보느라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싶어 화가 나 녀석을 위해 TV도 사고 전화도 놓았던
기억이 너무 새롭다. 띠동갑 막내 아우 덕(?)에 난생
처음으로 집안 살림살이를 장만했던 때가 어언 42년
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추억속의 한 장면이 되었다.
지금 막내 아우도 50이 넘었는데 그때 그 아파했던
그 상처를 덮어주려고 했던 오라비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