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쓰잘데기 없는 비가 오던 날
어릴적 어르신들은 그랬다.
가을걷이 할 무렵에 내리는 비는
아무 쓸모없는 궂은 비라고...
그 당시 표현을 그대로 기억해보면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비가 와 이리 와쌌노!"
그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도시에서 생활을 할 때에도 그랬다.
산골살이를 하면서부터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다.
한창 가을걷이를 하거나 갈무리 하는 시기인데
궂은 비가 내리면 그저 하루를 공치는 것임을...
농사철에 비가 안 와도, 너무 많이 내려도 걱정
이맘때 가을걷이 때는 쓸모없는 비 때문에 걱정
이래저래 끊임없는 농부님들의 근심 걱정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가 무진무궁(無盡無窮)이던가?
그렇다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재간이 없는
우리네 사람들이기에 걱정으로 일관하게 되는 것,
순응을 할 수밖에 없음이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다.
하늘을 원망해 보지만 이 또한 푸념에 불과하다.
살아가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 여겨야 할까?
하늘의 뜻이요, 자연 현상인 것을 어이 하겠는가?
아둥바둥 거리며 근심 걱정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며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 것이다
체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쪽으로 믿어보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새겨 보며...
늦가을 비라 할까, 초겨울 비라고 할까 구분이 안되는
아무짝에도 쓰잘데 없는 비가 추적거리던 날의 오후,
을씨년스럽고 스산하기까지 했다. 이런 날은 집안에
갖혀있는 것이라서 너무 무료(無聊)하기가 짝이 없다.
음악을 듣는 것도 싫고 책을 읽는 것도 그다지 흥미가
없다. 그렇다고 백주 대낮부터 혼자 술타령을 하기엔
더더구나 아니다. 술은 술시가 되어 마셔야 제맛이지?
점잖은 체면에 띠굴띠굴 시체놀이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다가 스마트폰을 열었다. 연락처를 클릭하자마자
ㄱㄴㄷ순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뜬다. 누구를
클릭할까 망설이며 위로 쭈욱 밀어 올려본다. 요즘에
바쁘다는 핑계로 통화도 제대로 못했던 형제들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전 회갑 지나간 남동생, 살만하니까
몸이 아파 고생하는 둘째 여동생, 서울 연희동 소문난
맛집으로 소개되어 바쁘게 음식점을 운영하는 막내
여동생에게 차례로 전화를 했다. 모두 제각기 열심히
살아가느라 바쁘단다. 그래도 목소리 들으니 반갑다.
그 다음 친구 몇몇과 통화를 했다. 이 또한 반가웠다.
예전과는 달리 항상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니까
언제, 어디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전화를 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구나 싶었다.
사흘째 비가 내리는 아침을 맞는다. 비가 내려 그런지
기온은 그다지 낮은 편은 아니지만 바람이 꽤 거세다.
이곳 산골은 어제 자정까지 40mm 가량 비가 내렸다.
밤새 얼마나 내렸는지 모르지만 어제 낮보다는 많이
온 것은 아닌 듯하다. 대신 비바람이 몰아쳐서 지붕이
있는 데크에도 온통 빗물이 젖었다. 지금은 비가 다소
소강상태인지 이슬비로 변해서 바람과 함께 몰아친다.
쓰잘데기 없는 비라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저만치에서
꽤 요란한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그런대로
들을만 하다. 이번 비에 물이 많이 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