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이런 이런 이럴 수가...
마음만 바쁘고
때가 때인지라, 철이 철인지라 예상이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추위가 몰아닥치니까 마음이 더 추운 것
같다. 아침 기운이 곤두박질을 하였다. 영하 5도란다.
아직 해야만 하는 일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추위가
몰려와 큰일이다. 빨리 김장도 해야하고, 밭설거지도
해야하고, 캐다 남은 도라지도 마저 캐야하고, 4년간
기른 산더덕도 캐봐야 하고, 다알리아 구근도 캐다가
손질해야 하고, 물기 빠져 너저분해진 꽃대도 잘라야
하는 등 산골의 겨울 채비는 아직 꽤 많이 남아있다.
무엇부터 해야할지 우왕좌왕 마음만 앞서가고 있다.
해마다 해왔었기에 올해도 여느해와 마찬가지일텐데
왜 이렇게 갈팡질팡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각컨데 만년초보를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냥 여유로울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던
산골살이는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바쁨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여유는 있다.
그런 것 때문에 지금껏 힘들다 하면서도 잘 견디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그 바쁨은 보람이란 결과로 귀결이
되기에 결국은 뿌듯한 마음으로 웃으며 끝내게 된다.
그런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망쳐버린 가을 채소농사
기온이 뚝 떨어지고 꽤 추워질 것이라는 날씨 예보에
걱정이 되어서 어제 오후 아내와 함께 무우를 뽑았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뽑고나서 보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무우라 할 수가 없다. 무우를 심었는데 정작
나온 것은 총각무우 수준이다. 무우청도 시원찮고...
보잘 것 없는 무우를 고르고 무우청을 다듬고 손질을
하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다. 이렇게 엉망으로 농사를
지어 18년 텃밭농사에 이런 수치스러움은 처음이다.
그래도 무우청 시래기는 조금이나마 말릴 수 있으니
다행이다. 여느해 보다 훨씬 양은 형편없이 작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쪽파는 잘 자라주어 제법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가을 채소농사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일까? 모르겠다! 결론은 창피한 노릇이다.
콩밭에서 망연자실(茫然自失)
바베큐장에 무우청을 시래기로 말리려고 널어놓고
낫을 들고 콩밭으로 갔다. 콩깍지가 꽤 튼실해 보여
만져보았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꽁깍지 안에 콩이
없다. 설마 그럴리가 하며 다른 나무도 또 다른 나무,
그 다음, 그 뒤... 메주콩도 쥐눈이콩도 전부 쭉쟁이다.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콩밭 한가운데 멍하니
서있는데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하며 밭에 들어왔다.
자초지정을 말하자 아내도 빈 꽁깍지를 만져보고 또
만져보다가 말문이 막혔는지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결국 수확은 커녕 실망만 잔뜩 안고서 콩밭을 나왔다.
콩수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날씨 좋은 날에 콩대라도
뽑고 밭설거지나 해야겠다. 에고~ 너무 허탈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래저래 농사를 망친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 없으니
영주 막내네 과수원에 내려가서 사과를 따주고 와야
겠다. 대리 만족, 대리 기쁨이나 맛보고 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