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깊어가는 가을, 산골 부부의 하루는...
서리가 깨고 햇살이 퍼진 아침나절, 밤새 카페 안에다
널어놓았던 홍고추를 꺼내 주차장에 검은 그물망 깔아
펼쳐 널고 있는 아내에게 "나, 뒷산 갔다올께! 당신은
운동이나 하시게!"했더니 "나도 산에 함께 가면 안돼?"
라고 했다. "응? 웬일이야! 나야 좋지! 함께 가세나!"
고추를 널어놓고 집에 올라와서 산에 갈 채비를 하고
아내와 함께 뒷산으로 향했다. 오르는 길, 뒷산 초입에
있는 마을 종옥이형 할머님 산소를 지나며 목례하는
하는 것을 잊지않는 아내와 촌부.. 지금껏 언제나 우린
이곳을 지날 때마다 목례를 하곤 한다. 그 산소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잣나무가 밀집하여 자라는 군락지가
있다. 아내와 함께 뒷산에 오른 것이 정말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은 너무
좋다. 늘 혼자서 다녔기에 더욱 신나고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겁이 많기도 하지만 산에 오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잣나무숲에서 잣송이를 줍는
것도 끝무렵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짜릿한 그 손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함께 잣나무숲에 올라가 잣송이를
줍게 하여 촌부의 마음까지 짜릿하였다. 힐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높고 맑은 가을날에 아내와
함께 잣나무 숲길을 걷는 것이 힐링이 아닐까 싶다.
아내가 보건지소에 전화를 했다. 장모님 드시는 약을
타러가야 하는 날이라 미리 전화를 한 것인데 때마침
독감 예방접종도 해야한다고 했단다. 부랴부랴 챙겨
내려가며 아내가 장모님댁에 들렸다. 그런데 장모님
하시는 말씀, "어디 가니?"라고 하셨다. 보건소에 약
타러 간다고 미리 전화를 드렸는데 그새 잊으셨을까?
정말이라면 걱정이다. 아직 괜찮으신데 가끔 이렇게
돌출 행동을 하셔서 놀라게 한다. 보건지소에서 약을
타고 장모님과 아내는 예방접종을 하고 나왔다. 65세
이상은 무료 접종이라 장모님은 해당이 되고 아내는
약간의 접종 요금은 내고 맞았단다. 촌부는 일터에서
접종하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나온 김에 봉평에 나가
장을 보고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메뉴를 찾았다. 뜨끈한 왕갈비탕을 하는 집으로 우린
좋았는데 장모님께서는 고기는 안드시고 국물에 밥만
말아서 드셨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너무나 잘
드셨는데 갑자기 고기가 싫다시니 이 또한 걱정이다.
집에 들어와 잠시 쉬었다가 아내와 함께 도라지밭에
나가 도라지 씨앗을 받았다. 몇 년만에 드디어 도라지
농사를 성공한 것이다. 지난 추석에 차례상에 올리고
식구들 먹을만큼 캔 이후 두 번째 수확을 제법 하였다.
시간이 모자라 다 캐지는 못했지만 3년을 키운 3년근
치고는 제법 튼실하다. 대공이 굵은 것만 다 캐면 꽤
많은 양이 될 것 같다. 아내는 도라지를 모두 다 캐면
손질하여 말려서 도라지 가루를 만들 것이란다. 강의
하느라 목을 많이 쓰는 아들에게 줘야겠단다. 우리도
먹고 나머지는 두고두고 반찬도 해먹을 것이라고...
점점 날씨가 차가워지고 아침으로 서리까지 내린다며
밭에 있는 상추를 모두 뽑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뜻에
따라 한 이랑을 심은 가을 상추를 모두 꺾었다. 지금껏
상추가 있어 좋았는데 이제 내년을 기약해야만 한다.
올해는 봄, 여름은 물론 가을까지 상추를 실컷 먹었다.
여름에는 상추를 너무 많이 심어서 거의 90% 이상은
남 좋은 일을 시켰다. 기르는 재미는 우리의 몫이었고
먹는 재미는 다른 분들이 즐겼지만 이런 것이야 말로
바로 나눔의 즐거움이요, 기쁨이었으니 뿌듯한 일이다.
저녁식사후 CBS 레인보우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를
털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아내는 고들빼기를 다듬고
있다. 흘러나오는 팝송이 그 옛날 우리가 많이 들었던
음악들이고 배미향 PD의 입담도 은은하면서 정겹다.
읍내에 나갔다 오며 올해도 맛김치를 담글 것이라며
고들빼기를 잔뜩 사왔다. 정작 아내는 이 김치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오로지 남편인 촌부를 위한 김치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들빼기 김치를 담가서 일년 내내
먹는다. 본인은 즐기지도 않으면서 그 손이 많이 가는
고들빼기 김치를 담그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고맙다.
일일이 잘 손질을 해야하고 우려야 하고 또 잘 씻어서
갖은 양념으로 담가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까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맛김치이다.
푹 삭힌 고들빼기 김치는 밥도둑이다. 그 뿐만 아니라
국수며 라면같은 면을 먹을 때도 기막히는 반찬이다.
올해까지는 고들빼기를 사서 김치를 담그지만 내년엔
우리 밭에서 기른 고들빼기를 뽑아서 먹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지난 여름 씨앗을 구해서 밭에 뿌려놓았더니
듬성듬성 나와 잘 자라고 있다. 이제 고들빼기도 우리
밭에서 길러 자급자족 하게 되면 또 하나의 기쁨이다.
오늘은 한글날,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이 좋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의 업적에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여전히 오늘도 산골의 아침 날씨는 꽤 차갑다. 이틀째
서리가 지붕위에 내려앉았다. 이대로 그냥 추워지면
안되는데... 잠시 이러다가 다시 따뜻하겠지? 그러기를
바래보는 촌부의 마음이다. 할 일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