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벌써 63회 생일이라네!
요즘 대부분 양력으로 쇠는 생일을 촌부는 음력으로
쇤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태어나 첫 돐부터 내
할머님께서 그렇게 차려주셨고, 내 어머님도 그렇게
해주셨으며, 또한 내 아내도 음력으로 생일상을 차려
준다. 3대에 걸친 여인네들의 음력 생일상이라 할까?
1956년 병신년(丙申年) 팔월 열아흐렛날, 양력으론
1956년 9월 23일... 그러니까 음력으로는 오늘이긴
하지만 양력으로는 이미 5일전이다. 그냥 웃고 지나
갈 짧은 여담 한 마디...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지만
지내는 생일이 다른 중학교 동창인 친구와 촌부이다.
친구는 양력으로 쇤다고 하니까 촌부보다 5일 빨리
생일상을 받았고, 촌부는 음력으로 쇠니까 5일 늦다.
생일을 음력으로 쇠느냐 양력으로 쇠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양력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생활이기에 그 친구처럼
양력에 맞춰 생일을 지내는 것이 더 알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와서 양력으로 바꿔서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이 촌부는 구닥다리 사람일까?
하나 더, 생일에 관한 구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내는 회갑이 지나면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지 않고
쇠고기 무우국을 끓여 먹는다며 올해도 쇠고기 넣고
무우국을 끓였다. 우리나라는 왜 생일날 미역국이나
쇠고기 무우국을 끓여 먹을까? 대충 알고있긴 하지만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찾아보며 기억을 더듬어 봤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그날부터
바로 미역국을 먹었던 것이다.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머니께서 산모인 어머니 머리맡에다 흰 쌀밥,
미역국과 그리고 정한수 한 그릇을 떠다놓고 빌었다.
촌부가 알기로는 삼신할머니께 삼신상을 차려놓은 후
산모에게 흰 쌀밥과 미역국을 먹이는 걸 첫 국밥이라
부르는 것이고, 그 미역국은 삼신할머니에게 출산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빌면서
먹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다. 이어 생후 삼일이 지나서
또 미역국과 흰 쌀밥을 차려놓고 삼신할머니께 두 손
모아 정성껏 빌었다. 출산 후 삼칠일, 21일째 되는 날
삼신상을 차려놓고 아기의 무병장수를 빌었던 것이다.
아마도 오래전에는 영아의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라서
그 고비를 넘길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 삼신할머니께
정성을 들여 치성을 드렸던 것 같다. 이후 생일날이면
할머님과 어머님은 흰 쌀밥과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차려놓고 먼저 삼신할머니께 두 손 모아 치성을 드린
후에 그 밥을 먹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마 요즘이야 이런 풍습은 거의 사라졌을 것 같지만
해마다 태어난 날,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먹는 풍습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삼신할미는 누구일까?
흔히들 삼신할미라고 하면 대부분 무당을 연상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대 신앙에서 삼신할머니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믿고 의지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기가 태어나면 흰쌀밥
짓고 미역국을 끓여 삼신할머니께 올리고 비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결론으로 말하면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먹는 고유 풍습은 우리 한민족
생명의 신께 감사와 소원을 비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어 회갑이 지나면 생일날 무병장수, 무탈의
의미로 소화가 잘되는 무우국을 맑게 끓여 먹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는
아내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음식이기에 맛있게
먹어야겠다. 지난 추석에 가족들이 모두 다 모였을 때
아들녀석이 사 온 생일 케익을 먹으며 파티를 했었다.
오늘은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원주에 나가서
맛있는 밥이나 먹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