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아내는 명절 차례상에 대한 걱정을 했다.
"과일은 어떤걸, 떡은 어떠며, 나물과 탕국은 어떻게
차려야 할까?"라고 하면서... 부모님의 살아 생전에는
그저 찾아뵙는 것만으로 맏며느리와 큰아들의 소임을
다 했었던 우리 부부였다. 그런데 이젠 부모님이 모두
우리곁을 떠나고 안계셔서 그럴 수도 없으니 이렇게
명절이 다가오면 더욱 더 부모님의 생각이 간절하다.
일찌기 분가하여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설상가상
18년 전 산골살이를 시작하면서 더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는 불효를 범했던 자식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9남매 중 셋째이며, 둘째 아들이셨던 우리 아버지는
일찌기 4남매를 데리고 고향 남해를 떠나와 서울에서
생활을 하시며 막둥이 여동생을 보태 5남매의 자식과
함께 지냈다. 고향에서는 그런대로 부유한 집안 축에
들었지만 서울 생활은 몇 번의 사업실패로 그렇게 잘
살지는 못한 평범한 가정이었다. 늘 어머니를 제대로
호강시키지 못하고 고생만 시켰고, 자식들 또한 학부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시며 자책 하곤 하셨던
우리 아버지는 성격이 온순하시고 내성적인 분이시라
겉으로 내색을 않는 분이셨다. 하지만 나름의 소신과
고집은 있으셔서 불의와 타협을 하거나 흔히 말하는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을 일삼는 짓을 모르는 분이다.
당시 오죽하면 집에 쌀이 떨어져도 데리고 일을 하던
인부들에게 만은 땡빚을 내서라도 임금을 챙겨주셨던
그런 분이셨다. 그러니 살림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뭐라 말할 수없는 고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심하게 잔소리를 하셨던 어머니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게 두 분 다 한평생 열심히
일을 하셨던 분들이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자식들
모두 출가를 시킨 다음 가끔 여행도 다니시며 노후를
보내셨다. 자나깨나 5남매 자식 걱정을 달고 사셨던
우리 부모님은 10년 전 77세 일기로 아버님이 먼저
세상을 등지셨고, 지난해 7월 83세 일기로 어머님이
우리곁을 떠나셨다. 어차피 누구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부모님을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늘처럼
명절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더욱 더 그렇다.
내 부모님께서 명절이면 자식을 기다리셨던 것 처럼
우리 부부도 이제 하나밖에 없는 아들녀석을 손꼽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떤 때에는 바쁘다며
찾아뵙지를 못한 때도 있었다. 죄송한 마음에 전화로
이만저만 사정이 생겨 못간다고 하면 서운한 마음이
많았겠지만 전혀 그런 내색없이 태연한 척을 하셨다.
"큰 아야! 걱정할거 없다. 언제라도 오모 되제 뭘라꼬
걱정 해쌌노? 괘안은께 시간나모 오게! 밥 잘 묵고..."
라시며 오히려 아들 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이유는 불효를 했기 때문일까?
이제 부모님 대신하여 우리 부부가 자식을 기다린다.
사흘동안 추적거리던 가을비가 드디어 그쳤다. 어제
부터 추석 명절 귀성객이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출발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산골 식구들도
하나 둘 산골집으로 올 것이다. 조카 딸내미와 함께
영주에서 막내네가 오후에 도착한다 하고, 인천에서
둘째네가 밤에 출발한다 하고, 아들녀석도 어제 일은
마쳤으나 반갑고 고맙게 근래에 사귀는 아이가 있어
오늘 만나 데이트를 하고 저녁 늦게나 새벽에 출발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두어 번을 만난 모양인데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우리 부부의 바람이다. 그리고
처남네 식구도 이번 추석에는 내려오겠다고 했단다.
모두 안전하게 왔으면 좋겠다. 장모님께서도, 아내도
식구들이 온다고 하여 좋아라 하면 기다리는 눈치다.
간만에 오늘부터 단지가 북적북적, 시끌벅적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