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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산골의 어버이날 스케치


2026년 5월 9일 토요일

음력 丙午年 삼월 스무사흗날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바깥에 나갔더니

지붕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기온은 영하였다. 기상청 발표 영하 0.6도,

산골집 온도계의 수은주는 영하 1.2도였다.

5월도 초순이 지나가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미련많은 겨울의 심술인가?

아님 우리고장을 미워하는 하늘의 저주인가?

움이 트고 새싹이 돋고 꽃이 만발는 아름다운

5월임에도 불구하고 서리 내리는 영하의 날씨,

한두 해 겪은 일은 아니지만 너무 의아스럽고

당황스러웠으며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늘의 뜻이요, 자연의 이치, 자연의 섭리인걸!

이렇게 살아온 날들이 어언 26년의 산골살이...

옷깃을 여미면서 부랴부랴 난롯불을 지폈다.

참 좋고 따스하다. 이런 호사도 하늘의 뜻일까?

아주 뒤늦게 오고 후다닥 가버리는 산골의 봄,

여름과 가을도 그리 길지않고 겨울이 반년이나

되어 기나긴 추위와 많은 눈과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고장이 이곳 설다목 산골의 기후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고 살아가는 촌부이다.

첨부하는 참 아름다운 모습의 사진을 살펴보면

촌부가 왜 그러는지 충분히 알겠지 싶은데...


어제는 어버이날,

이른 아침 7시 집을 나서 식물원으로 출근했다.

도착하자마자 출근부 서명을 하고 차 한잔 끓여

마시고 관사 휴게실을 나와 여기저기를 살폈다.

아직 일을 시작하기 전이지만 식물원에 나가면

아침마다 궁금증 때문에 혼자 탐방로를 걸으며

야생초, 나무들을 살피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되어

그냥 있을 수가 없다. 어제도 그랬다. 혼자 걷는

이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좋아하는 꽃,

아끼는 나무들도 촌부를 알아보는 것인지 아님

촌부 느낌뿐인지는 모르지만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했다. 이제 푸르름이 짙어져가고 채워져

가는 듯하다. 바라보는 촌부의 마음까지 한가득

푸르름으로 채워지는 것 같아 흐뭇하고 좋다.


어버이날이라고 두 시간 반쯤 일을 하고 마쳤다.

이곳 산골은 마을마다 경로잔치가 있기 때문에

식물원 담당자가 어버이날이라고 배려해 주었다.

참, 아침에 도시에 사는 하나뿐인 자식인 아들이

전화를 주었다. 어버이날인데 직업 특성상 집에

올 수 없다며 축하 전화를 한 것, 우리는 잘 안다.

어버이날이라고 집에 못오는 것도, 아들이 우릴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전화로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라고 했고 "아들! 고마워~ 사랑한다!"라고 했다.

저녁때 학교에 다녀온 아내가 슬그머니 말했다.

"아들이 용돈을 보내왔어! 넉넉히 못보내 죄송한

마음이래! 이 정도면 충분한데... 고맙지 뭐야!"


식물원에서 퇴근하여 집에 왔더니 오전 11시,

아내를 태우고 곧장 경로잔치가 있는 마을회관에

내려갔다. 이장, 총무와 멘토 아우가 반겨주었다.

많은 주민이 회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부녀회에서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어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할머니들 쪽에 앉고

촌부는 마을 형님들 사이에서 두어 명의 아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산골식 뷔페 음식이

참 맛있다. 부녀회에서 준비하느라 애쓴 음식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형님들과 아우들이 축하酒라며

술잔을 건넸지만 사양을 해야했다. 어버이날에도

학교에 나가야하는 아내와 처제를 데려다 주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는 것은

절대 안되는 것이라서 사양한 것이다.


아내와 처제를 인근 학교에 내려주고 마을에 다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이장과 총무와

멘토 아우가 "형수님 학교 모셔다 드리고 꼭 내려

오셔! 어버이날에 술 한 잔 해야지요?"라고 해서...

하지만 생각을 돌렸다. 집에서는 이서방이 혼자서

펜션 데크 재시공을 하느라 고생하는 것을 봤기에

술 보다는 일을 택한 것이다. 힘든 것은 아니지만

꼼꼼하게 시공하려는 이서방을 옆에서 보조라도

하는 것이 옳을 듯했다. 수평 맞춰가며 기초작업을

해놓은 위치에 방부목에 장식을 끼워 밑작업하는

것을 도왔다. 목공예가라서 꼼꼼하게 시공하려는

모습이 참 보기좋았다. 오랜만에 이서방과 함께한

작업이고 그 작업을 도와주어 흐뭇했다.


저녁때 처제가 아내에게 전화했다. 스피커폰이라

들렸다. "형부 수고하셨는데 이서방이 저녁 산대!

함께 나갔다고 오면 좋겠어! 다녀오시라고 하셔!"

라고 하여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 뭘 그래?"라고

했다. 그랬더니 "오늘은 밥하기 싫어서요."란다.

이서방이 전화로 "순댓국 한 그릇하고 오시죠?"

라고 하여 나갔다. 이 집은 이따금씩 다니는 식당,

맛이 아주 좋고 양도 넉넉하다. 이서방이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 혼자서

다 비웠다. 좋은 안주겸 식사라서 맛있게 먹었다.

문득 옛날이 생각났다. 우리 세 자매, 세 동서가 

함께 살던 때에는 셋이 자주 나가 밥을 먹으면서

술도 한잔씩 하곤 했는데 이젠 아득한 추억이다.

어쨌거나 올해 어버이날은 이래저래 즐거웠으며

뿌듯하고 흐뭇했다.


https://band.us/band/7070781/post/43059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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