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비움과 채움의 교차...
이제 이른 아침 기온이 두 자리 숫자에서 한 자리로
떨어져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하기사 오늘이 8월
마지막 날이고 이미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가
지났으며,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서 풀잎에는
흰 이슬이 맺한다는 절기 백로(白露)가 다가오니까
그럴만도 하다. 덥다고 안달복달을 한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어느새 서늘한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계절이 바뀌고 차가운 절기로 변하다 보니 산골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제 촌부네 밭에도 비움과
채움이 교차하는 시기가 되었다. 하나 둘씩 봄과 여름
채소는 흔적을 감추었고 이제 남은 것은 몇 종류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가지와 토마토는 열리고 있으며
지난 여름내 아내가 무척 좋아하는 열매채소 오이는
주렁주렁 열려 많은 수확을 하게 해주었다. 아쉽게도
이제 오이덩굴을 걷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먹고남은
오이는 장아찌를 담가놓았고 노각이 된 끝물 오이는
한동안 무침으로 식탁에 오를 것이다. 촌부가 바쁘게
다른 일을 하느라 움직이다 보니 미처 오이덩굴 걷는
일을 못하고 그냥 놓아 두었더니 아내가 그 일을 했다.
오이덩굴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김장용 청갓 씨앗을
뿌리겠단다. 아내가 비움의 일을 거들어 준 것이다.
그럼 촌부는 뭐가 그리 바쁘다고 분주히 움직였을까?
풀을 깎는 예초기 작업은 눈에 띠게 표시가 잘 나지만
이런저런 소소한 일을 하기는 해도 표시가 잘 안난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이 아니기에 상관은 없다.
지난 8월 잦은 비에 가을채소 배추, 무우, 총각무우가
꽤나 많이 자라 밭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중 무우는
새로운 방법으로 재배를 시도해 보았다. 한 줄로 심은
것이 아니고 지그재그로 심어 보았다. 결국은 두 줄로
심은 결과인데 그동안의 방법과는 다르게 시도해본다.
자라면서 잎이 겹치는 것을 방지하고 뿌리인 무우가
더 튼실하게 자라지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도하는
것인데 괜찮을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씨앗을
세 알씩 뿌린 무우는 거의 모두 싹이 트고 서너 장의
본 잎이 나왔다. 지난 8월 초순 무렵 씨앗 뿌릴 적에
한 알은 땅 속 벌레들을 위해서,
또 한 알은 하늘을 나는 새들을 위해서,
나머지 한 알은 수고하며 심은 나를 위해서 뿌렸는데
모두 싹이 나왔다. 벌레들도 새들도 양심이 있었을까?
아님 염치가 있었을까? 벌레들과 새들이 씨를 뿌리며
수고한 촌부에게 양보를 한 것이고 보시를 한 것이라
생각된다. 좋게 생각하며 셋 중에 가장 튼실한 녀석만
남기고 둘은 뽑았다. 어차피 내 몫은 하나이고 그래야
무우가 제대로 자라게 될테니까 뽑아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흙을 퍼서 북을 주었다.
뽑은 새싹들은 버리지않고 떡잎을 떼어내어 아내에게
갖다주었더니 맛있는 겉절이를 하여 식탁에 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비움을, 촌부는 채움을 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