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걸어서 십오리를...
어제 늦은 오후, 해가 질무렵에 약 십오리쯤 되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왔다. 요즘 세상에 조금은
엉뚱한 발상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아침에 길이
얼어서 자동차를 집에 두고 갔었고 우리마을 오는
버스시간을 기다리려면 한시간 반 이상은 아무일
없이 마냥 시간을 허비해야함이라 옛날 어릴적에
걷던 기억을 하며 걸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촌부가 어린시절엔 학교도 멀어서 논두렁 밭두렁,
시냇물가를 거쳐서 바닷가에 있는 용머리 바위를
돌아 약 7~8리가 되는 거리를 걸어서 다녔었다.
그리고 읍내로 장을 보러가려면 울퉁불퉁 자갈을
깔아놓은 신작로를 따라서 약30리쯤 되는 거리를
걸어서 다녀오곤 했었다. 어릴적 읍내에 다녀오는
일이 극히 드물었지만 어쩌다가 운이 좋은 날에는
할아버지의 소달구지를 타는 행운도 있기는 했다.
그때 길을 걷던 기억은 50년이 훨씬 넘는 참으로
오래된 길을 걷는 것에 대한 추억이다.
모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발걸음은 마치
어릴적 방과후 집으로 향하는 그 마음, 그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다지 춥지도 않고 부는 찬바람도
때마침 뒤에서 부는 뒷바람이라서 가는 방향으로
밀어주는 듯했고 차갑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해질녘 노을이 좋고, 눈쌓인 먼산을 보는 즐거움에
눈이 호사를 누리고, 길옆으로 보이는 집들 모습도
볼만했다. 오는 길에 있는 후배네 스키샵에 들려
차한잔하고 오려고 했으나 아쉽게 외출중이란다.
오래전 도시에서 같은 회사 옆부서에서 일을 했던
후배인데 인근마을에서 스키샵을 운영하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걷다보니 우리마을 근처에
근래 새로 생긴 찐빵집이 보인다. 얼마전 아내와
함께 들려 사먹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며칠전
아내가 다음에 좀 사오라고 했던 기억이 나길래
들어가 한봉다리를 사갖고 왔다. 마치 장에 나가
마나님 좋아하는 것을 사가지고 오는 남정네처럼
의기양양 집에 와서 줬더니 어찌나 좋아하는지...
집에 도착했더니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어휴~ 힘들다.
그래도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즐거운
도보귀가였다. 요즘 세상에 어처구니없는 엉뚱한
짓을 했다는 아내의 성화가 있기는 했지만...
바람에 제법 거세게 불어 풍경소리가 어찌나 세게
들리는지 그 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 도보로 인해
피곤했던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부랴부랴 바깥에
나와보니 기온은 영하 9도라서 어제와 사뭇 다른
오늘이다. 아직 꽃샘추위는 아닐테고 이런걸 반짝
추위라고 하는 것인가? 오늘은 원주에 다녀와야
겠다. 지난 1월초에 다친 손이 계속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가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