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단상]선물에 대한 생각 그리고 추억...
"주어서 좋고, 받아서 고맙고, 서로가 기쁜 것..."
바로 이것이 주고받는 선물이 아닌가 싶은데...
선물은 많고 적음, 크고 작음을 떠나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정이 듬뿍 담겨 있어야 좋은 것이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않아야 하고 그 어떤 댓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순수한 마음의 전달이 되어야만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바로 선물이 아닌 뇌물이 되겠지? 이것은
요즘 메스컴에 꽤나 자주 오르내리고 떠들썩하는
김영란법인가 뭔가 하는 법의 시행 때문에 문제가
되는 공직사회를 비롯한 각계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서로에게 부담이 없어야만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촌부야 뭐 이렇고 저런
선물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가끔 수확한 농산물,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나누고자 할 때에는 난감한
마음이다. 촌부 마음같아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지만 소량이고 한정된 것이라 여러
사람들과 나누지를 못함이라 죄송하고 미안하다.
한가위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 요즘은 선물 때문에
물류작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수고가 너무 많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속으로 너무나 안타까웠다.
대부분 정규직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비정규직의
임시직이며, 흔히들 '알바'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인데 12시간을 일하면서 휴식시간도
제대로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넉넉하게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야 집에 도착하는 택배를 그냥
받기만 하면 되지만 도착하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수고가 있음을 알고나니 왠지 죄송한 마음이다.
추석명절 밑이라서 택배물량이 폭주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마음으로나마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맘때쯤 선물이니 택배니 하는 말을 듣게 되면
까마득한 옛날 생각이 난다. 지금처럼 원할하고
편리한 물류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가 않았던
그 시절, 그러니까 촌부가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던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그땐 명절이 가까워지면 회사들마다
거래처에 선물을 나르는 일이 아주 큰 일이었다.
요즘이야 물품을 구입하면서 주소를 알려주기만
하면 택배나 퀵서비스로 배달이 되지만 그 당시는
일일이 직원들이 선물을 차에 가득 싣고 배달을
해야만 했다. 요즘처럼 차량이 많지않아 교통은
그다지 정체되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아닌 집을
주소를 들고 찾아 다녀야 했기에 많이 힘들었다.
촌부도 알만한 회사의 부장, 국장을 거쳐서 조금
작은 회사의 상무까지 지냈지만 그 당시 과장님,
부장님, 상무님의 지위는 지금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위치가 아니었나 싶다. 선물을 싣고
하루종일 배달하느라 돌아다니다 보면 별아별
꼴을 다보고 당하기도 하였다. 고맙고 수고한다며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챙겨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는가 하면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왔는데도 받을
생각은 안하고 손짓도 아닌 고개로 집안 위치를
가르키며 갖다놓으라는 몰상식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종일 다니고 나서 회사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지만 낮에 못한 밀린 업무를 해놓고 늦은 밤에
귀가를 했었다.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불평불만
없이 참으로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너무 새롭다.
참으로 오래되고 아련한 촌부의 선물에 얽혀있는
추억속의 이야기 한토막인데 이 추억을 꺼내다가
보니 그 옛날 촌부의 상사님들 근황이 궁금하다.
※어젯밤 경주에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분들께서
고생을 하고 다친분도 있다는 뉴스를 접하였다.
많이들 놀라셨을텐데 빠른 안정을 찾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은 오후나 저녁때부터는
추석명절 귀향이 시작되겠지? 모두들 안전하고
원할만 고향가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에
사는 촌부의 아들도 내일 집에 온다고 하는데...
편찮으신 어머님 때문에 즐거워야할 추석명절도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어머님이 병환중이시라
차례를 지내지말라고 하셔서 더 그런가 보다.
제례를 생략하는게 예지
하물며 어머니께서 편찮으신데
조상님도 중요하지만
산사람이 먼저인게지 합리적인 전통적 사고지
그나저나 우선하셔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