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 엄니 팔순 모임당일치기로 한 왕복 장거리 운전이 꽤나 힘에 부쳤나 보다. 누군가 그랬듯이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듦이라 그럴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여느날에 비해 늦게 아침을 열었다. 평소보다 한시간정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창문너머로 햇살이 비춰 눈이 부셨고 산새들의 지저귀는 요란한 소리가 잠을 깨웠다. 찌푸둥한 몸으로 바깥에 나왔더니 오늘도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은 지붕이 첫눈에 들어왔다. 영하3도... 어제보다 기온이 조금 높아졌다. 산골아낙이 화살나무가지에 얹어 놓은 모이통에 연신 모이를 쪼아대며 왔다갔다 하는 두마리의 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침을 시작한다.
어제는 서울에서 팔순을 맞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형제들이 함께 모여 가족모임을 가졌다. 옛날같으면 일가친척, 이웃, 지인들을 초대하여 떠들썩하게 잔치를 베풀었겠지만 요즘 세상은 그런것도 허례이고 민폐인지라 우리가족들만 모여 막내아우네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조촐하게 어머님 팔순 축하연을 가졌다. 사실 이런날은 마땅한 장소를 구하느라 고심을 하게 되지만 우리는 그런 걱정은 안한다. 막내네는 서대문구에서 지정한 건강음식점이라서 늘 가족모임은 여기서 하게 된다. 넓다란 마당이 있어 외관도 좋고 가정집을 개조한 내부는 집처럼 아늑하고 깔끔한 분위기라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이런날 아버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아마 어머니께서도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가족모임을 마치고 둘째네가 어머니 친구분들께 드리려고 준비한 세가지의 떡과 식혜를 가지고 어머니께서 다니시는 노인회관으로 갔다. 어르신들께 멀리 강원도에 사는 큰아들과 큰며느리라고 인사를 여쭙고 떡과 식혜를 전해드리고 왔다.
울 엄니는 60년전 스물한살에 스물네살의 아버지를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셨고 그 이듬해 가을 첫 아들인 촌부를 낳으신 것을 시작으로 모두 2남3녀의 자식을 두셨다. 분가하기전 결혼초 몇해동안은 종가집 둘째며느리로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하셨다. 촌부도 어릴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증조부모님, 조부모님, 백부모님, 부모님, 아버지 밑으로 삼촌 네분, 고모 두분 그리고 사촌형과 촌부... 4대가 커다란 집에 함께 사는 대식구였다. 당시 아버지 형제분중 맏이이신 큰고모님을 제외하고도 엄청난 대가족이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족 모양새... 이 많은 가족들 식사준비며 빨래 그리고 농삿일까지 종부인 큰어머니와 함께 다 하셨단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층층시하 윗어르신들께서 여느 다른집 시부모님들처럼 까다롭지않아 별다른 시집살이는 없었다고 회고하셨다.
등 파먹구 고려장 지내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가.
관심갖구 자주 들여다 보구 잊지 않으면 현대판 효자다.
뽀시기고 효도받아야 되는데.....
아들 며느리 손자. 곧 받겠지 쪼메만 기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