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만감이 교차한 서울나들이
2025년 11월 9일 일요일
음력 乙巳年 구월 스무날
11월 초순이 끝나가는 날씨답지 않게 꽤 포근하다.
어제 우리가 서울에 다녀오는 사이 잠시 비가 조금
내렸다고 하더니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마치 봄날 아침처럼 안개가 자욱하다. 기온도 영상
6도에 머무르고 있어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어제는 아침 일찍 산골집을 출발, 장평시외터미널
부근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아내와 함께하는 서울나들이다.
주목적은 조카 녀석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결혼식이 오후 4시라서 시간계획 잡기가 애매모호,
아주 어중간했다. 자동차로 당일치기 왕복하는 것도
분명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여 그냥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일찌감치 올라가기로 하고 결혼식 전까지
남는 여유 시간은 다른 일정을 잡았다.
2시간 가까이 소요되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시청역에 내려서 조금 걸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정오 무렵이라
우선 민생고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봐야 별것도
아닌 냄비우동을 먹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젊은 날
추억의 맛집이라 할 수 있는 60년 전통의 유림면을
먹으러 갔다. 예나 지금이나 손님이 많다. 그 옛날
해태제과 시절 아내와 연애하던 그때 정동MBC를
출발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나서 이따금씩 냄비우동
한 그릇씩을 먹었던 그곳이다. 그 이후에도 서울에
가면 가끔씩 들리곤 하는 추억의 맛집이다.
'유림면'하면 아내는 웃지못할 추억이 스린 집이다.
40여년 전인가? 아들 녀석이 네 살 무렵, 서울집에
다니러 갔다가 녀석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려고 그
집에 가서 냄비우동 한 그릇을 시켰는데 녀석이 다
먹어 아내는 더 시키지도 못하고 국물만 먹고 그만
나왔단다. 그때부터 녀석의 뱃구레가 컸든지 지금
처럼 뚱보가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때
이후 이 집에만 가면 그 이야기부터 꺼내며 아내는
눈물도 찔끔거린다. 우동 한 그릇 더 시켜 먹을 돈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네 살배기 아들
굶긴 엄마처럼 보여진 듯하여 창피하기도 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거나 유림국수는
우리 둘의 추억이 스린 맛집이라고 하여 찾게 된다.
식사후 잠시 추억의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덕수궁
관람을 하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마치 강원도 산골 부부가 서울나들이 왔다고 환영을
하듯이 입장료가 무료란다. 무슨 행사 때문인데...
덕수궁에 들어갔더니 서울은 아직 가을색 만연이다.
우리고장 봉평은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에 접어드는
시기인데 말이다. 산골에서 제대로 못한 단풍구경을
서울에서 하다니... 정말 오래간만에 덕수궁 전체를
다 둘러보았다. 아내와 함께 여유로운 마음과 많은
시간을 할애한 그런 시간이라서 참 즐겁고 좋았다.
뿐만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가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특별전 관람을 한
것은 덤이었다. 여기도 입장료는 있었지만 65세가
지난 나이는 무료관람이다. 지하철도 공짜였는데...
어찌되었거나 결혼식에 갔다가 여유로운 시간으로
잘 활용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오후 4시, 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 결혼식은 우리에겐 특히 이 촌부에겐 기쁘지만
눈시울을 적시게 했고 마음속으로 슬픔을 삭혀야만
했던 결혼식이었다. 6년전 봄날에 57세의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우리곁을 홀연히 떠나버린 사랑하는
둘째 여동생 큰아들 결혼식이었다. 작년 2월 작은
아들이 먼저 결혼을 했던 그날도 그랬듯이 어제도
웃음바다, 눈물바다로 범벅이었다. 어미, 아비없이
하는 결혼식도 그렇고 혼주석에 앉아있는 막둥이
여동생 부부를 보는 마음이 너무나 아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흘렀다. 즐겁고 기쁘고 경사스런
날에 백발의 할배가 우는 것이 남사스러울 것 같아
참으려고 했으나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남들이
볼까봐 몰래 눈물을 삼키기도 하였고 어쩔 수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혼주석에 앉은
막둥이 여동생이 우는 바람에 더 그랬다. 둘이 정말
죽이 잘 맞고 다정다감했던 언니가 앉아있어야 할
그 자리에 대신 앉아있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게 둘째 여동생 큰아들 결혼식은
잘 마쳤다.
분명 하늘에서 지켜봤을 사랑하는 둘째 여동생과
매제에게 두 아들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듬직한 소방관이 되었고 며느리들도 아주 참하고
마음씨가 곱고 예쁘니 이제 앞으론 두 아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늦은 밤, 아내와 함께 막차로 산골집에 돌아왔다.
마음이 너무 훵하여 맥주 한 캔을 마시려고 하는데
막둥이 여동생 부부가 전화를 했다. 마음도 그런데
술이나 한잔하고 하룻밤 묵어가지 그랬냐고 했다.
말이라도 고맙다. 큰오라비인 촌부와는 띠동갑인
막둥이와 매제는 평소에 우리 부부에게 참 잘한다.
머잖은 이 달 말, 어머님 기일에 이천호국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늘 오라비와
큰올케를 부모님 맞잡이라며 챙기는 아우가 있어
마음 뿌듯하고 든든하다. 만감이 교차한 어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