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모처럼의 예초기 작업
2025년 10월 31일 금요일
음력 乙巳年 구월 열하룻날
온통 가을비로 얼룩진 10월,
그 시월도 어느새 막바지 끝날에 이르렀다.
가을은 참 좋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이 없었고 그런 계절 같지가 않았다.
싸늘한 영하의 기온, 차디찬 된서리까지 내려
가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겨울이 성큼...
오늘 아침도 영하 1도, 서리가 하얗다.
늦가을에 꽃대를 잘라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촌부는 25년 세월, 산골살이를 하면서 한 해도
거르지않고 이맘때가 되면 겨울채비 일환으로
꽃대 자르기를 하고 있다. 혹자들은 그냥 놔두면
될 것을 왜 힘들게 꽃대를 자르느라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는다. 글쎄? 왜 그 고생을 하는 걸까?
솔직히 말해 너저분함이 너무 볼썽사나워 자른다.
꽃이 지고 물기가 빠져 꽃대가 마르면 보기싫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깔끔한 것이 좋아 자른다.
볼짱을 다 봤으니까 잘라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다. 생각컨데 마른 꽃대를
잘라주면 주변이 깨끗하고 깔끔하기도 할 뿐더러
잘려진 꽃대나 잎은 흙에 닿아 비나 눈을 맞으면서
썩게 될 것이고 그래야만 거름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 거름은 살아있는 뿌리, 새로운 씨앗에게 소중한
양분이 되어 봄날 건강한 새싹으로 돋아날 것이다.
이 생각은 '자연순환의 법칙'을 실천하는 것이겠지?
결론적으로는 이놈 촌부의 성격 탓이다.
젊어서도 그랬지만 나이가 들수록 너저분하거나
추레한 꼴을 그냥 두고보지 못함에서 비롯된 고생,
그래서 그 고생을 사서 하는 모양새라고 할까?
모처럼 예초기를 짊어졌다. 오랜 세월 함께함이라
숙달되어 나름 꽤 잘 다룬다. 누구나 다 잘 알듯이
예초기 작업은 상당히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다.
방심은 금물, 복장부터 미리 단디 갖춰야만 한다.
흙이나 잔돌이 튀고 딱딱한 나무나 꽂대도 튄다.
조금 두꺼운 옷을 입고, 발목, 무릎 사이 보호대를
착용하고, 보안경을 끼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촌부는 두 대의 예초기를 사용한다.
봄이나 여름날 풀을 베는 용도는 줄날을 사용하고
풀과 잡목이 섞였거나 지금처럼 억센 꽃대를 베는
늦가을에는 쇠날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주구장창
줄날만 사용했다. 잡목은 따로 톱으로 잘라가면서
하다보니 일이 많았다. 고장도 잦아 고생도 했다.
그런 모습을 일기에 썼더니 친구가 예초기를 사서
보내왔다. 그때가 2019년 6월이었으니까 어느새
6년전이다.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요즘에도, 어제도 예초기를 짊어지면서
친구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일을 시작했다.
마당에 자그마한 꽃밭이 있는 것이라면 전지가위,
낫으로 정리하면 되겠지만 우린 꽤나 넓은 단지라
예초기를 사용해야한다. 능수능란하게 해치운다.
너저분했던 단지 곳곳은 깔끔하게 변해가는 것은
예초기 작업 묘미라고 할까? 요즘 예초기 작업은
키가 꽤 큰 꽃대라서 씨앗이 달려있는 윗쪽부터
몇 번에 나눠서 자른다. 씨앗이 흙에 닿아 봄날에
자연발아가 되어 새싹이 돋아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한다. 나머지 꽃대와 잎, 줄기는 거름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년간 겪은 경험이다.
어찌되었거나 꽃대정리를 하며 또 한 해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