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얼떨결에 하게 되는 김장
2025년 10월 21일 화요일
음력 乙巳年 구월 초하룻날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도 수은주가 곤두박질하여
한 자릿수 기온, 영상 4도에 머문다. 추위를 느낄
정도라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이겠지만 실제 그런
느낌이다. 앞으로는 추워지면 추워졌지 더워지진
않을 텐데 벌써부터 추위를 걱정하며 호들갑이다.
이또한 나이듦의 조짐일까? 어느 친구의 말마따나
'이제 겨우 70인데...'
어제 오전, 식물원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로, "이서방이 배추를 잔뜩 구해왔어!
그냥 김장을 할까 싶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무우,
청갓 좀 뽑아주셔!"라고 했다. 25년 산골살이에서
이렇게 빠른 김장은 처음이다. 옛말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더니 꼭 그런 격이다. 이곳 우리고장은
김장이 다른 고장에 비해 많이 빠른 편인데 그보다
더 빨라서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그저 생긴 배추를
시기를 맞춘다고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산골마을은 추위가 일찍 오는 탓에 입동무렵에는
김장을 마친다. 올해의 입동은 다음달 11월 7일,
상당히 빠르기는 하다.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있어
아무때나 김장해도 상관은 없으니 좋은 세상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먼저 청갓을 뽑아놓고
무우를 뽑아 무우청을 분리했다. 무우가 튼실하고
알맞은 크기로 잘 자라주어 참 좋다. 두 이랑에서
나온 무우와 무우청이 상당하다. 이미 뽑아먹었고
영주 막내네와 용인 처남댁에게도 몇 뿌리씩 갖다
주었다. 우리 두 집 김장용으로 쓰고도 한참 남을
양이다. 잘 보관하여 겨우내 먹을 방법을 찾아야
겠다. 아마 아내는 또 서울 막둥이 아우네 보내야
한다고 하지않을까 싶은데, 그때 가서 생각하자.
김장용으로 쓸 것은 따로 마대에 담아 두 집으로
갖다놓고 나머지는 두 자루에 담아 다용도 창고에
놔두었다. 진잎은 손수레 싣고 큰밭에 썩어 거름
되라고 뿌려놓았다. 무우청은 데크에 미리 마련해
둔 거치대에 갖다가 하나하나 펼쳐서 널어놓았다.
우리 데크는 지붕이 있어 비를 맞지않고 해도 드는
반그늘이라서 시래기 덕장처럼 알맞은 조건이다.
기왕 일을 시작한 것, 아내 픽업하러 가려면 조금
시간이 남아서 작은밭 입구에 쳐놓았던 그물망을
해체하고 걷어놓았다. 그것 하나 걷었다고 훤하다.
그래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면서 정리의
계절이기도 하다.
아내와 처제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장작집에
나란히 앉아서 청갓과 미나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멀찌감치에서 자매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채소 다듬는 모습이 참으로 정답고 정겹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혼자 이런 생각이 들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오손도손 재밌게 즐기며
살자!"라고... 아내가 "일이 바쁘니 저녁은 시켜다
먹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좀 같다 오면 안될까?"
라고 하였고, "마나님 분부 받들어 모시겠나이다!"
라며 웃었다. "한우마을에서 한우국밥 사오시오!"
라고 하기에 "한우육회도 사오면 안될까?"했더니
"육회는 무슨, 국밥만 사와!"라고 했다. 옆에 있던
처제가 "형부 고생했는데 드시라고 해!"라고 하니
그때서야 아내가 "그럼 육회도 사다 먹던가..."라며
말을 흐렸다. 처제가 "형부! 육회도 사오세요!"라고
하여 "오케이!"하고는 곧장 인근 평창한우마을로
달려가 한우국밥, 한우육회를 사와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에 아내를 잠시 도왔다. 배추를 절이는 것과
현관에 놓아둔 무우를 들여놓아 주었다. 그랬는데
모처럼 밭일하여 피곤했는지 쇼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들어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무우, 쪽파,
미나리 씻는 것까지는 봤는데... 일어나보니 그사이
절여놓은 배추를 한번 뒤집어 놓은 것 같았다. 더
도와주지도 못하고 잠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오늘 김장준비와 김장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으로
어젯밤 돕지못함을 만회하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