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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서서 하는 고생, 대단한 고집


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음력 乙巳年 팔월 스무이렛날


어제 초저녁 또 시작한 가을비가 오전까지 내렸다.

"올가을은 와 이리 비가 잦을꼬?" 이런 말 하기도

이젠 지겨울 정도이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몰라도

기온은 그리 낮은 건 아닌데 아침과 저녁무렵이 꽤

스산하여 난롯불을 지폈다. 이런 날엔 역시 난로가

효자노릇 톡톡히 한다. 이내 훈훈하고 뽀송뽀송한

느낌이라 참 좋다. 흔히들 말하는 불멍하기도 좋다.

하지만 15년 넘게 우리를 따뜻하게 해줬던 난로도

이제 닷새 후면 이별을 해야한다. 펠렛난로로 바꿀

예정이라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참 많이

고마웠다. 우리의 겨울을 훈훈하게 지켜주었으니...


가을비가 추적거려 일을 할 수 없어 단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집입구 주목나무 꼭대기에

나팔꽃이 피어있다. 재밌는 모습이다. 덩굴이 타고

올라가 더 이상 감고 오를 수 없음이라 가까운 팥배

나뭇가지를 감았다. 식물의 생명력,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아무튼 참 신기하고 재밌다.

시도때도 없이 내리는 비는 싫지만 빗물을 머금어

물방울 맺힌 모습은 볼만하다. 가을꽃도, 씨방에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하지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이 신기하여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다.


비로 인해 바깥일 못하니 요즘 자주 아내를 돕는다.

아내가 김장을 하려면 멸치젓갈을 달여서 액젓으로

내려야한다고 했다. 지난번 여수에 여행을 갔을때 

사온 멸치젓갈을 달일 준비를 부탁했다. 브루스타,

커다란 곰솥을 꺼내주었다. 이 젓갈달이기는 오래전

어머님 살아생전에 아내에게 전수한 것인데 지금껏

긴 세월동안 사서 고생하며 대단한 고집을 부린다.

이젠 그만하고 사서 먹으면 안되느냐고 해도 No다.

곰삭아 탁한 남해안産 멸치젓, 갈치속젓을 사다가

곰솥에 넣고 적당량의 물을 붓고 끓여서 푹 달인후

고운 채에 거름종이 얹어놓고 조금씩 부어 내리면

맑은 액젓이 된다. 멸치젓, 갈치속젓은 꽤 기름지고

탁하여 아주 서서히 맑은 액젓이 되기때문에 꽤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다않고 고집을 부리는

아내를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싶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파는 것은 마음에 안들고 못믿겠다며...


오후엔 또다시 어제 수확한 알타리무우, 사다놓은

고들빼기로 맛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소금에 절이고

씻어 물기 빠지는 동안 나머지 부재료를 준비했다.

너무 힘들어보여 돕겠다고 했더니 버무리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하긴 이따금씩 김치 담글 땐 돕곤

하기에 생소한 일은 아니다. 버무리며 간도 봐주고...

깔끔하기로 소문난 아내가 준비하고 나름 식도락가

먹빵이라고 자칭하는 촌부가 버무렸으니 틀림없이

밥도둑 맛김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두 집만 맛김치를 담가 먹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어제 남겨둔 알타리무우를 마저 뽑고 농사가

그런대로 잘된 무우도 뽑아서 한 박스씩 만들었다.

내일 이천에서 가족행사가 있어 영주 막내네에게 

갖다주려고 한다. 우리는 25년전에 이곳에서 함께

산골살이를 시작하며 많은 고생을 했던 아우들이라

늘 마음이 쓰여 적든 많든 무엇이든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처제네 사과를 일년

365일 매일 먹고 있어 작은 보답이라도 하는 것이

맏이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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