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이젠 너저분함이 싫어서...
2025년 10월 12일 일요일
음력 乙巳年 팔월 스무하룻날
요즘 입에 달고사는 말이 있다.
"가을 장마인가?"
"이놈의 가을비는 왜 이리 자주 내리노?"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젠장, 이러다가 농작물 다 작살 나겠네!"
"제발 좀, 비가 그만 내렸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언제쯤이나 햇볕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비가 잦은 궂은 날씨다.
25년 산골살이에서 이런 가을은 처음인 듯 싶다.
살다살다 이런 가을날씨를 겪은 기억이 전혀 없다.
오죽하면 밭가, 밭고랑에 청태(靑苔푸른 이끼)가
끼어 미끄럽다. 개울가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을
밭에서 보다니 기겁할 노릇이다. 햇볕이 참 그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생화들은 꿋꿋하게, 예쁘게
핀다. 대표적인 것이 자그마한 꽃송이로 노랗게
피는 산국이다. 자연은 정말 신기하고 오묘함이다.
하도 가을비가 자주 내려 일을 못했다. 그러다보니
단지 곳곳도, 집주변도 너저분함의 극치라고 느낄
만큼이다. 밭가의 한 이랑 심은 들깨는 씨가 맺혀
익기도 전에 서있는 그대로 썩어버렸다. 앞마당의
더덕과 매꽃 덩굴에 매달린 씨방에 씨앗이 익기도
전에 썩어 문드러져 보기가 싫다. 잎파리와 덩굴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다 눈에 거슬린다. 앞마당의
야외탁자도 관리를 잘못한 탓도 있지만 오래되어
부식되고 썩는다. 앉을 수 없을 정도라서 뵈기싫다.
가랑비 내리다가 이슬비로 바뀌어 내린 아침나절,
우의를 입고 장독대 앞쪽 포토존이라고 세워놓은
조형물을 감고 있는 더덕과 매꽃 덩굴부터 제거를
했다. 잎과 줄기는 이제 물기가 빠졌고 씨앗 맺혀
있는 씨방은 잦은 비에 익지도 못하고 썩어버렸다.
푸르름이 좋았고 꽃이 피어 좋았는데 이젠 너무나
너저분함이라 걷어내야만 했다. 앞이 훤하게 트여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라서 좋다. 첫번째 너저분함
제거라고 할까?
우의를 입은 채 밭으로 나갔다. 손에는 낫이 들여
있다. 비닐봉지도 하나 들고 나갔다. 우선 쓰러짐
방지를 위해 묶어두었던 고추끈을 풀고 드문드문
지지대로 세워둔 고추대를 뽑아냈다. 그리고나서
낫으로 들깻대를 베어 밭고랑에 던져놓았다. 이미
반은 썩은 상태, 마저 다 썩으면 거름이 될 것이다.
매일 운동을 하는 아내도 걷기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나다닐 때마다 거무티틱한 것 보기싫었다.
그 너저분했던 것을 베어내 밭고랑에 깔아놓으니
그냥 기분도 좋고 보기도 좋다. 다만 미련이 남는
것은 들깨 수확을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이것이 두 번째 너저분함 제거이다.
세 번째 너저분함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앞마당에 놓인 야외탁자다.
하도 오래되어 나이도 많긴 하지만 제대로 관리를
못해 나무가 부식되어 썩은 부분이 많아 제노릇을
못할 정도, 그냥 놔두기엔 꼴불견이다. 지난 봄날에
나물을 뜯어와 손질하려고 앉다가 의자부분이 썩어
큰일 날 뻔했다. 오일스텐을 칠했지만 못질한 곳이
썩어 주저앉은 것이다. 부분 보수를 할까도 생각을
했지만 위험하여 정리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았으나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오늘까지 온 것이다. 해체를
하려고 온갖 도구를 다 동원했다. 워낙 기계치이긴
하지만 해체를 하는 것이 만드는 것 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힘든 것 같았다. 해체 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참 잘 만들었는데 해마다 오일스텐 칠을 게을리하지
않았더라면 한참 더 사용해도 되었을 것인데 하는
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후회가 되었다. 그렇긴 해도
좁은 마당에 놓여있었던 너저분한 것을 없앴더니
아주 깔끔하고 마당이 넓어보여 너무 좋기는 하다.
나이가 들수록 너저분함이 싫다. 그래서 오늘 했던
일은 잘했구나 싶다. 처제가 수고했다며 저녁식사
초대를 했다. 뼈다귀 감자탕, 진짜 맛이 그만이었다.
비를 맞으며 너저분한 것도 정리했고 처제 덕분에
뜨끈뜨끈하고 얼큰하고 구수한 감자탕에 소주 한잔
걸쳤더니만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는 그런 기분이다.
이런 기분, 이런 맛은 산골살이 묘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