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날의 산골살이... 단풍으로 수를 놓는가 했더니 짧은 가을이 깊어가다 말고 자취를 감추려고 한다. 성급한 겨울이 가을을 가로막고 앞질러 추월을 하는 듯하여 계절의 구분을 분간하기가 애매모호한 산골이다. 그러니 요즘 산골의 계절변화는 참으로 신기하게만 생각된다. 두 계절이 함께 공존한다고나 할까? 가을과 겨울이 번갈아 가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보니 할 일이 많은 촌부의 마음은 조급함에 어쩔 줄을 몰라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일을 하고 들어오니 현관에 털신이 나란히 자리를 하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만난 털신이다. 지난 겨울이 지나고 초봄 신발장에 들어가 한참을 겨울잠이 아닌 하절기 잠을 자고나서 이제서야 다시 기지개를 켜고 나온 것이다. 이제 내년 초봄이 올 때까지 겨우내 산골아낙과 촌부의 발을 따뜻하게 보호해주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반갑다. 털신아~!!!
산골아낙은 요즘 참 바쁘게 지낸다. 어제는 겨울 김장은 물론 내년 이맘때까지 양념으로 쓸 고춧가루를 준비하였다. 우리밭에도 고추를 꽤 많이 심지만 여름내내 손님들과 우리식구들이 풋고추를 따서 먹기 때문에 붉은 고추로 익을 새가 없어 지금껏 해마다 마을아우네에서 적당한 양의 태양초를 구입한다. 하나하나 깨끗이 닦고 꼭지를 따서 방앗간에 나가 가루로 빻아 오는 일인데 쉬운 일은 아니다. 꼭지를 따는 작업은 매워서 재치기를 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기도 하는 힘든 작업이지만 혼자 해야한다며 고집을 부리는 산골아낙은 한나절만에 마무리를 하였다. 고추농사를 잘 지은 마을아우네 덕분에 좋은 고추로 빻아온 고춧가루가 아주 곱다며 한해동안 좋은 양념을 먹게 되었다고 싱글벙글하는 산골아낙은 마냥 신이 났다.
고춧가루 때문에 기분이 좋다고 하더니 저녁에 햇잣으로 잣죽을 끓여 야식으로 내놓았다. 잣을 갈아 찹쌀가루와 함께 끓인 잣죽은 고소하고 부드러워 아주 맛이 좋다. 촌부가 직접 주워온 잣은 자연이 준 선물이며, 산골아낙의 정성어린 손맛이 함께 아우러져서 그런지 더없이 맛이 좋은 야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