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내것이 아니다.
?
서양인들이 그토록 부러워 하던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인 효(孝)가 사라지고있다.
이 오래된 전통문화가 꺼져가는 화롯불 지경이 되어,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다.
젊은 세대는 부모 모실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급하면 부모의 재산을 제 예금통장인양 꺼내 쓸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자기의 노후를 포기하면서 자녀를 도와준다.
이런 불공정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는 피(血)를 나눈사이이기 때문이고 한국인의
특질인 정(情) 때문이다.
영어에는 정이란 단어가 없다.
그런데 자녀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가 자기들 좋아서 나를 만든 것이니까,
끝까지 애프터를 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망발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막말을 하는 패륜아는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따지고 나오면 분통이 화산같이 터져 나오겠지만
매로 다스릴 수도 없다.
얼마전 저녁뉴스를 보니까 스마트폰 게임을 한다고
어머니가 9살 먹은 아들을 때리니까
그 꼬마가 어머니를 경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면
말세(末世)라고 난리가 났을텐데
이제는 그저 그러느니 쯪쯪하고 혀만 차고 지나간다.
아마도 그 어린이는 격리 당하지 않고
여전히 학교에 다닐 것이다.
오히려 여론은 양비론(兩非論)으로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넘어가고 있다.
60. 70대 세대는
가족관계로만 보면 가장 불운한 세대다.
정성을 다하여 부모께 효도하였는데,
자식한테는 효도를 받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가족 먹여 살리 느라고 뼈 빠지게 일하다가
은퇴를하여 노후를 좀 즐기려고 했더니,
마누라한테 벌벌 기는 불쌍한 세대가 되었다.
은퇴자 중 마누라한테
떵떵 거리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수십억 재산가나 되면 몰라도
지금은 여성전성시대이고
젊은 부부들도 여성이 가정을 지배한다.
농경사회에서는 환갑잔치를 기점으로 하여
곳간 열쇠와 농사 짓는 일은 자식에게 물러주고
편안히 노후를 즐겼다.
그러던 것이 사회가 산업화하면서 자녀들이 부모
품을 떠나도시로 진출함에 따라 부자관계는
자연히 소원하게 되었고,
교육받은 여성이 많아짐에따라 며느리는
시부모 모시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구사회에도 미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영어에도 효도(孝道)라는 단어(filial duty)가 있으며
패륜아(悖倫兒)란 단어(an immoral person)가 있다.
다만 서구는 우리보다 앞서 19세기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경사회가 붕괴되어
자연히 효도란 풍습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부모세대가
일찍이 노후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자녀는 자생력을 키우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부유층이 아니면
자녀는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등록금을 내고
취직하면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아 나간다.
그리고 부모는 연금으로 노후를 보낸다.
10여년 전만 해도
연금으로노후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 돈의 값어치가 옛날만
못하여 연금생활자도 허리를 졸라 메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공무원, 교수.교사 등 교직원,
영관급 이상 군인들은 연금이 3~4백만원으로,
노후를 지내는데 지장이 없으나
일반 봉급생활자들은 연금이 1백만원 이내에
불과하여 그것으로는 생활할 수는 없다.
헌데,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사업하는 자녀는,
심지어 사위까지도 은행대출 받는다고 집을
담보로 내 놓으라고 욱박지른다.
집은 노후생활의 마지막 보루다. 집이라도 있으면
주택연금을 받아 그런대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자녀 회사가 부도라도 나면 정말 개털이 된다.
다 늙어 잠 잘 방 하나 없어 동가숙 서가숙하게 된다.
우리 초등학교 때 국어 책의
'할미 꽃'이라는 동화를 기억하는 분이 있으리라.
큰 딸, 두째 딸 집에서 쫓겨나 세째 딸 집으로 가다가
세째 딸의 집이 보이는 고갯길에서 지쳐 죽고 말아
그곳에 할미꽃이 피었다는 슬픈 얘기다.
세익스피어의 '리어 왕'도 딸 셋에게
배신 당한다는 똑 같은 스토리이다.
자녀는 원하는 만큼 교육을 시키고, 결혼을 시키고,
전세를 얻어주고,능력이 있으면 집도 사주면
그것으로 부모의 의무는 끝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예금통장이 아니고
딸이나 며느리의 도우미가 아니다.
손주는 당연히 애 엄마가 키워야지,
손주 키우느라 팔에 관절염이 걸리거나
동창모임에도 못 나가고
노후를 완전히 노력봉사로
그 황금같은 시기를 놓쳐서는 않된다.
친구들은 경치 좋은 교외로 밥 먹으러 다니고
일년에 한 두번은 해외여행도 다니는데,
힘이 다 빠지고 나서 생각하면 땅을 칠 노릇이다.
딸이나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면 유아원에
넣든지 말든지 하라고 딱 잘라 거절해야 한다.
내 인생이 중요한 것이다.
더 이상 희생하는 사람은 바보다.
이 만큼 힘들게 인생항로의 파도를 헤쳐 왔으면
이제는 내 인생을즐길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광의로 해석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이다.
노년은 더 이상 가시나무새가 되어서는 않된다.
이제 자식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식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자식은 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집 담보를 요청해도 매정하게 거절하고 손주
봐 달라고 해도 갖은 핑계를 대고 피해야 한다.
돌봐 주었댔자 밑져야 본전이다.
혹여 탈이라도 나면 모두 뒤집어 쓴다.
나도 곧 딸을 결혼 시키지만,
손주가 태어나면 우리집 문 앞에 이렇게 적어놀
계흭이다"손주와 개는 출입 금지"라고 크게
있는 재산 아끼지 말고
마음껏 노후를 즐기다가 가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집도
역모기지(주택연금)를 이용하여
남은 인생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데에 써야 한다.
여행을 좋아하면
세계일주 크르즈를 타 보던지,
사회봉사에 관심이 있다면 불우이웃을
위한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식에게 상속을 해 줄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것이 자녀들의 자생력을 키워 이 세상
더 건강하게 살도록 해 주는 것이다.
21세기는 21세기에 맞는 삶의 방식에 따라야 한다.
이제는 삶의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상속은 예로부터 상속자의 삶을 망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자식들에게 상속의 기대감을 포기하도록
기회있는대로 주입시켜야 한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속담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이제는 자식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물론 예외없는 법칙없다고
자식 둔 맛에 사는 사람도 많다.
자식 덕에 노후를 편안히 즐기는 사람도 많다.
더구나 옛날에는 出家外人이라고 말 그대로
남이었던 딸이 얼마나 효도를 많이 하는가.
딸이 최고인 시대가 왔다.
이렇게 세상은 돌고 돈다.
하지만 딸 신세지면 사위한테
구박 받으니까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미국은 장모. 사위 사이가
우리나라 고부관계처럼 나쁘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라간다.
곧 우리나라도 사위와의 갈등이 불거질 것이다.
어쨋든 자식에게 기대지 말고 독립해야 한다.
자식은 이제 남이다.
그렇게 생각 하자
?
?
서양인들이 그토록 부러워 하던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인 효(孝)가 사라지고있다.
이 오래된 전통문화가 꺼져가는 화롯불 지경이 되어,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위기다.
젊은 세대는 부모 모실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급하면 부모의 재산을 제 예금통장인양 꺼내 쓸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자기의 노후를 포기하면서 자녀를 도와준다.
이런 불공정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는 피(血)를 나눈사이이기 때문이고 한국인의
특질인 정(情) 때문이다.
영어에는 정이란 단어가 없다.
그런데 자녀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가 자기들 좋아서 나를 만든 것이니까,
끝까지 애프터를 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망발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막말을 하는 패륜아는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따지고 나오면 분통이 화산같이 터져 나오겠지만
매로 다스릴 수도 없다.
얼마전 저녁뉴스를 보니까 스마트폰 게임을 한다고
어머니가 9살 먹은 아들을 때리니까
그 꼬마가 어머니를 경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면
말세(末世)라고 난리가 났을텐데
이제는 그저 그러느니 쯪쯪하고 혀만 차고 지나간다.
아마도 그 어린이는 격리 당하지 않고
여전히 학교에 다닐 것이다.
오히려 여론은 양비론(兩非論)으로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넘어가고 있다.
60. 70대 세대는
가족관계로만 보면 가장 불운한 세대다.
정성을 다하여 부모께 효도하였는데,
자식한테는 효도를 받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가족 먹여 살리 느라고 뼈 빠지게 일하다가
은퇴를하여 노후를 좀 즐기려고 했더니,
마누라한테 벌벌 기는 불쌍한 세대가 되었다.
은퇴자 중 마누라한테
떵떵 거리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수십억 재산가나 되면 몰라도
지금은 여성전성시대이고
젊은 부부들도 여성이 가정을 지배한다.
농경사회에서는 환갑잔치를 기점으로 하여
곳간 열쇠와 농사 짓는 일은 자식에게 물러주고
편안히 노후를 즐겼다.
그러던 것이 사회가 산업화하면서 자녀들이 부모
품을 떠나도시로 진출함에 따라 부자관계는
자연히 소원하게 되었고,
교육받은 여성이 많아짐에따라 며느리는
시부모 모시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구사회에도 미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영어에도 효도(孝道)라는 단어(filial duty)가 있으며
패륜아(悖倫兒)란 단어(an immoral person)가 있다.
다만 서구는 우리보다 앞서 19세기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경사회가 붕괴되어
자연히 효도란 풍습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부모세대가
일찍이 노후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자녀는 자생력을 키우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부유층이 아니면
자녀는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등록금을 내고
취직하면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아 나간다.
그리고 부모는 연금으로 노후를 보낸다.
10여년 전만 해도
연금으로노후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 돈의 값어치가 옛날만
못하여 연금생활자도 허리를 졸라 메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공무원, 교수.교사 등 교직원,
영관급 이상 군인들은 연금이 3~4백만원으로,
노후를 지내는데 지장이 없으나
일반 봉급생활자들은 연금이 1백만원 이내에
불과하여 그것으로는 생활할 수는 없다.
헌데,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사업하는 자녀는,
심지어 사위까지도 은행대출 받는다고 집을
담보로 내 놓으라고 욱박지른다.
집은 노후생활의 마지막 보루다. 집이라도 있으면
주택연금을 받아 그런대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자녀 회사가 부도라도 나면 정말 개털이 된다.
다 늙어 잠 잘 방 하나 없어 동가숙 서가숙하게 된다.
우리 초등학교 때 국어 책의
'할미 꽃'이라는 동화를 기억하는 분이 있으리라.
큰 딸, 두째 딸 집에서 쫓겨나 세째 딸 집으로 가다가
세째 딸의 집이 보이는 고갯길에서 지쳐 죽고 말아
그곳에 할미꽃이 피었다는 슬픈 얘기다.
세익스피어의 '리어 왕'도 딸 셋에게
배신 당한다는 똑 같은 스토리이다.
자녀는 원하는 만큼 교육을 시키고, 결혼을 시키고,
전세를 얻어주고,능력이 있으면 집도 사주면
그것으로 부모의 의무는 끝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예금통장이 아니고
딸이나 며느리의 도우미가 아니다.
손주는 당연히 애 엄마가 키워야지,
손주 키우느라 팔에 관절염이 걸리거나
동창모임에도 못 나가고
노후를 완전히 노력봉사로
그 황금같은 시기를 놓쳐서는 않된다.
친구들은 경치 좋은 교외로 밥 먹으러 다니고
일년에 한 두번은 해외여행도 다니는데,
힘이 다 빠지고 나서 생각하면 땅을 칠 노릇이다.
딸이나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면 유아원에
넣든지 말든지 하라고 딱 잘라 거절해야 한다.
내 인생이 중요한 것이다.
더 이상 희생하는 사람은 바보다.
이 만큼 힘들게 인생항로의 파도를 헤쳐 왔으면
이제는 내 인생을즐길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광의로 해석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이다.
노년은 더 이상 가시나무새가 되어서는 않된다.
이제 자식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식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자식은 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집 담보를 요청해도 매정하게 거절하고 손주
봐 달라고 해도 갖은 핑계를 대고 피해야 한다.
돌봐 주었댔자 밑져야 본전이다.
혹여 탈이라도 나면 모두 뒤집어 쓴다.
나도 곧 딸을 결혼 시키지만,
손주가 태어나면 우리집 문 앞에 이렇게 적어놀
계흭이다"손주와 개는 출입 금지"라고 크게
있는 재산 아끼지 말고
마음껏 노후를 즐기다가 가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집도
역모기지(주택연금)를 이용하여
남은 인생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데에 써야 한다.
여행을 좋아하면
세계일주 크르즈를 타 보던지,
사회봉사에 관심이 있다면 불우이웃을
위한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식에게 상속을 해 줄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것이 자녀들의 자생력을 키워 이 세상
더 건강하게 살도록 해 주는 것이다.
21세기는 21세기에 맞는 삶의 방식에 따라야 한다.
이제는 삶의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상속은 예로부터 상속자의 삶을 망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자식들에게 상속의 기대감을 포기하도록
기회있는대로 주입시켜야 한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속담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이제는 자식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물론 예외없는 법칙없다고
자식 둔 맛에 사는 사람도 많다.
자식 덕에 노후를 편안히 즐기는 사람도 많다.
더구나 옛날에는 出家外人이라고 말 그대로
남이었던 딸이 얼마나 효도를 많이 하는가.
딸이 최고인 시대가 왔다.
이렇게 세상은 돌고 돈다.
하지만 딸 신세지면 사위한테
구박 받으니까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미국은 장모. 사위 사이가
우리나라 고부관계처럼 나쁘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라간다.
곧 우리나라도 사위와의 갈등이 불거질 것이다.
어쨋든 자식에게 기대지 말고 독립해야 한다.
자식은 이제 남이다.
그렇게 생각 하자
?
조선일보 이정원 기자 | 2013/10/10 03:00
지난달 30일 오전 6시 42분쯤 경기 남양주시의 한 하천변에서 A(78)씨가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목에는 끈에 쓸린 자국이 나 있었고 시신 근처 하천 난간에선 끊어진 끈과 '내가 죽거든 불암산에 뿌려다오'라고 적힌 유서가 나왔다. 한때 안정된 직장인 경제 단체에서 일했던 A씨 말년은 불행했다. A씨는 노후 자금으로 아들 사업을 도왔지만 사업은 영 시원치 않았다. 함께 사는 아들 내외와 관계도 서먹해졌다. 사업이 안 풀려 빚을 많이 진 상태에서 아들 내외를 분가(分家)시키기도 어려웠다. 자살을 결심한 A씨가 집을 나섰을 때도 가족은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뒤 몽롱한 상태로 걸음을 옮기다 계단에서 쓰러져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A씨가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자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장성한 자식의 딱한 형편을 외면하지 못해 지원했다가 부모마저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불행한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은퇴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은 전문직 부모들도 이런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11월 의사 정모(71)씨는 운영하던 병원 원장실에서 허리띠로 목을 매 숨졌다. 유족은 "정씨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 갔지만 사업에 실패했고, 병원 운영도 신통치 않아 정씨 역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 충동을 겪었다고 응답한 노인은 통계청의 2008년 조사에서 29.3%로 나타났지만 지난해에는 35.1%로 증가했다.
늙은 부모의 노후 자금에 손을 벌리는 '캥거루족'이 늘면서, 비극은 끔찍한 패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8월 13일 인천 남구 용현동에서 어머니와 형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검거된 정모(29)씨는 범행 한 달 전쯤 어머니에게 "빚 8000만원을 갚아야 하니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 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어머니 재산 10억원을 노리고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7월 경기도 수원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이모(22)씨도 생활비와 유흥비로 1400만원을 빚지자 범행을 결심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아버지가 생활비를 주지 않아 친구들과 공모해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과거와 달리, "자식에게 안 받고 안 주는 게 낫다"는 부모가 점점 느는 추세다. 60세 이상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2005년 50.7%에서 2011년 70.8%로 증가했다. 하지만 2010년을 기준으로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9세 성인은 2000년의 25만3244명보다 오히려 91.4% 늘었다. 주로 경제적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자식이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는 한국 특유의 가족 문화와 '부모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는다'는 물질적 교환 심리가 결합해 장성한 캥거루족 자식을 늙은 부모가 부양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전통적 가족 공동체 안에서 자라 밖에선 개인주의적·합리주의적 사회생활을 해온 자식 세대가 금전적 어려움에 놓이면 가장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얻고자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라며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줄어든 데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중년 캥거루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