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쉬는 날이 더 바쁘군!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음력 乙巳年 유월 초이튿날
전날 장맛비가 내려서인지 안개가 자욱한 아침,
기온은 꽤 높아 영상 17도였다. 허나 하루종일
잔뜩 흐리고 이따금씩 이슬비가 내리기도 했다.
여느날과는 달리 기온은 영상 22도에 머물렀다.
산골살이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집에서 피고지는
꽃을 볼 수 있음이 특혜가 아닌가 싶다. 요즘에는
낮달맞이꽃이 한창이다. 언젠가 멘토이신 유氏
어르신댁 사모님께서 대여섯 그루 주셔서 심은
것인데 몇 년 사이에 상당히 많은 번식을 하였다.
알기로 밤에 피는 달맞이꽃 개량종인데 아마도
유전자 조작을 하여 낮에 피게 하고 키를 작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뿐만아니라 꽃양귀비도 피기
시작한다. 이 꽃을 길러보고 싶어 지난해 씨앗을
구해 뿌렸는데 흰꽃은 없고 빨간색만 피고 있다.
또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꽃, 백일홍 몇 송이가
피었다. 머잖아 많이 피면 꽤나 보기좋을 것이다.
오늘은 식물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는 날이다.
이상하게 집에 있는 날, 쉬는 날이 훨씬 더 바쁜
것 같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
이른 아침에 나오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뒤에
집에 들어오게 되니까 말이다. 성격상 한가한 것
보다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선호하지만 그래도
너무 바쁘게 오늘 하루를 지낸 것이 아닌가 싶다.
갑자기 세무서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겨 아침
일찍 집을 출발했다. 횡성을 지나고 소사 고개를
지날 무렵에는 안개가 너무 심해 비상등을 켜고
운행을 해야만 했다. 원주에 도착했으나 때마침
출근 시간과 맞물려 도로가 정체였다. 산골에서
볼 수 없는 그런 광경이다. 정말 오랜만에 번잡한
러시아워 경험이었다. 조심 운전을 해야만 했다.
걱정했으나 다행히 세무서에 갔던 일은 잘 됐다.
일을 다 보고 집에 왔더니 아내가 곧바로 진부로
가자고 했다. 둘째네가 이번 달부터 국민연금을
수급하게 되었다며 점심을 사겠다고 먼저 진부로
출발했다고... 얼마나 받는 지는 모르지만 사주는
것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였고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후 다이소와 농협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오는
도중 장평에서 아내를 학교에 내려주고 왔다.
그냥 쉴까하고 TV를 켰으나 문득 아침에 밭에서
꽤 잘 자라 따야할 시기가 된 오이를 발견한 것이
생각나 이내 TV를 끄고 장바구니와 가위를 챙겨
오이밭에서 오이를 땄다. 각양각색의 생김새이다.
그러면 어떤가? 아무 상관없다. 무려 열아홉 개를
땄다. 첫 수확이 이 정도면 오이농사 시작이 좋다.
둘째네 맛보라고 몇 개 주고 우리도 저녁에 하나
유부초밥 재료를 하여 먹었다. 다 같은 오이지만
우리가 손수 기른 것이라서 그런지 더 맛이 좋다.
지금부터는 언제나 먹고 싶을 때는 즉시 싱싱한
오이를 따먹을 수 있다며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
오늘 첫 수확을 한 오이는 오이지를 담가놓았다.
지금부터 거의 매일 몇 개씩 수확하는 오이 또한
계속 아내가 좋아하는 오이지를 담그고, 촌부가
너무 좋아하는 오이간장장아찌도 담글 것이라며
싱글벙글 좋아하는 아내 모습에 농사짓는 보람을
느낀다.
현관 다용도 창고에 아내가 마늘 쪽나누기를 하던
흔적을 발견했다. 엊그제 고향 남해에서 온 마늘,
쪽나누기를 하다말고 학교에 나간 것이다. 의자에
앉아 하나하나 쪽나누기를 했다. 10kg의 마늘이
꽤나 많아 보였다. 그냥 봐도 튼실해 보이고 쪽을
나눈 것도 아주 좋아 보인다. 아내를 데리러 가는
시간까지 모두 해치우려고 했으나 마음 뿐이었다.
결국 다 못하고 아내가 저녁준비하는 동안에 조금
쪼개놓았고 마무리는 아내가 했다. 수고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뭐 그까이꺼 별 거 아냐!"
라고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녁식사는 오이 첫 수확 기념 별식 유부초밥을
했다고 했다. 유부에 갖은 양념한 밥을 넣고 오이,
개맛살 등으로 만든 샐러드를 얹어 맛있고 멋진
요리가 되었다. 거기에다 울외장아찌를 한 조각
얹어 먹으니 너무 좋았다. 간단해 보이지만 아주
좋은 한 끼 식사가 되었고 아내의 아이디어가 참
멋지고 기발하구나 싶다. 쏘맥 한 잔도 곁들여...
식사후 잠시 나가 작은밭 옆쪽 자투리 나물밭의
잡초를 뽑았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짧은 듯하지만 많은 일을 하느라 꽤 바빴던 하루,
남들 보다 하루를 더 길게 살았던 촌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