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토끼처럼 풀만 먹어도 좋다!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음력 乙巳年 오월 열엿샛날
이제 분명 신록의 계절이요, 초여름이다.
이른 아침은 영상 11도, 선선하지만 상쾌하다.
한낮의 햇볕은 꽤나 따갑다. 영상 26도였다.
서산으로 해가 지고나면 기온은 급격히 떨어져
곤두박질이다. 얇은 옷이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어쩌면 이런 기후는 산골의 특별함이요, 특징이
아닐까 싶다. 청정지역이라서 그럴 것이다.
오늘은 식물원에 일을 나가는 날이라서 일찌감치
서둘러 집을 나섰다. 늘 그 시각은 아침 7시이다.
도시와 달리 도로는 한산함이요, 한적함이었다.
국도에 자동차라곤 이따금씩 밭일 나가는 농부의
차가 보일뿐 도로는 거의 내가 전세를 낸 듯하다.
빨리 달릴 필요가 없다. 그렇게 느릿느릿 달리며
산골의 주변 풍광을 만끽하는 느낌은 정말 좋다.
출근길인지 드라이브를 하는 것인지 모를 지경,
이럴 수 있음은 아무나 접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촌부만의 호사라고 하는 것이 딱 맞는 표현이다.
하루 걸러 나가는 식물에는 낯익은 나무를 비롯
온갖 자생식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제각기 멋진
모습으로 촌부를 반긴다. 바꿔 말하면 이 촌부의
눈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일 뿐이다. 식물들은
말이 없으니 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루
사이에 산딸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 꽃은 참
특이하다. 십자가 모양의 꽃이 피고 가을엔 빨간
딸기 모양으로 익는다. 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의 그 십자가는 이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넉 장의 흰
꽃잎이 십자가를 닮았다 하여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나무를 성스러운 나무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우리 시니어들 휴게공간인 관사 앞마당엔 인가목
(人伽木, 장미과) 분홍색 예쁜 꽃이 찔레꽃을 꼭
닮았다. 그뿐만아니라 하얀색 때죽나무꽃도 엄청
예쁘다. 어릴적 나무 열매를 돌로 찧어 시냇물에
풀어놓으면 은어가 잠시 마취되어 둥둥 떠올랐던
그 기억, 때죽나무꽃을 보며 추억을 소환해봤다.
해질녘 밭에서 풋고추 따먹으려고 심은 몇 그루
안되는 고추밭에서 고추끈을 묶어주고 있었다.
저만치에서 아내가 "저녁에 꽁치통조림 조림을
할테니 상추 좀 뜯어와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가뭄 기가 있어 연일 물주기를 했더니 무럭무럭
잘 자랐다. 상추 한 이랑, 레드치커리 한 이랑에
쑥갓 몇 그루가 올해 잎채소 전부이지만 우리가
먹기에는 너무 많다. 아무래도 나눔으로 해결을
해야할 것 같다. 아내가 차려놓은 산골 저녁밥상,
꽁치통조림을 청양고추와 생강을 넣고 간장으로
졸였고 밭에서 뜯은 상추, 레드치커리, 쑥갓으로
쌈을 싸서 한 볼테기 했더니 기가 막히게 맛있다.
다른 반찬이 몇 가지 더 있었지만 필요가 없었다.
쏘맥까지 곁들여 그 어떤 진수성찬도 안부럽다.
"토끼처럼 풀만 먹어도 좋다!"라고 했더니 이내
아내가 정색을 했다. "무슨 섭섭한 말을 하는고?
꽁치조림, 추억의 고추장찌개와 머위무침도 있고
무우생채, 콩나물무침은 안보이나?"라며 웃었다.
특히 고추장찌개는 44년전 신혼시절 첫 끼니의
찌개였기에 우리에게 추억어린 음식인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풀때기 밥상이지만 우리에겐 더
없이 좋고 맛있는 밥상인 것이다.
*'풀때기'는 원래 '잡곡의 가루로 풀처럼 쑨 죽'을
뜻하는 말이지만 촌부는 '풀 한 무더기'란 의미로
써본 것이다.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어릴적
할아버지께서 가끔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그대로
써봤다. 경상도式, 고향 남해式 표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