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아내의 53년 지기 친구와의 만남
2025년 2월 28일 금요일
음력 乙巳年 이월 초하룻날
짧은 달, 2월 마지막 날이다.
해가 많이 길어져 동이 일찍 튼다. 저녁무렵에
지는 해도 많이 늦어졌으나 산골의 질긴 겨울은
아직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춥다.
이른 아침 기온 영하 8도, 그나마 어제 아침까지
두 자릿수 영하의 기온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오고 살아감에 있어 친구가
소중하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얼마만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신뢰하는
마음이 두터우느냐 하는 것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중요한 마음 가짐이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이렇듯
친구는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면서
가족을 제외하고 삶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다 안다.
친구(親舊),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으로 정의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옛날부터 전해오는 친구에
관한 속담이나 고사성어, 어록을 살펴보면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생각나는
대로 옮겨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친구와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
'친구는 일가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고,
관포지교(管鮑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라는 고사성어가 있으며,
유명한 사람들이 말했던 명언의 어록도 있다.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진실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조지 워싱턴-
'친구는 근심과 슬픔을 서로 나눠야 하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
너무 서론이 길었다. 각설하고 친구와의 교류와
소통, 만남에 대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아내는 촌부에 비해 교류하는 친구가 많이 적다.
그렇지만 형제와 같을 정도로 절친한 친구들과
교류하며 소통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여고동창 친구들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제는 그 중에 여고동창 친구 집에 방문을 했다.
원래는 다섯 명이서 모임을 가졌으나 한 친구가
오래전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 지금껏 네 친구가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까 53년 지기 친구들이다.
수원 출신인데 수지, 화성, 대구, 평창에 떨어져
살다보니 자주 만나지 못해도 긴 세월 이따금씩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가까이 살았더라면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을 텐데 늘 안타깝다.
가정주부이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이라
만남의 제약이 되곤 한다.
어제 갑작스레 만남이 이어졌다. 두 분은 사정상
함께하지 못해 많이 아쉽긴 했다. 도시 바람이나
쐬러 오라고 초대를 하여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산골집을 출발해 수지로
향했다. 지난해 형님이 세상을 떠나 많이 힘들실
텐데 워낙에 대단한 분이시라 꿋꿋하게 씩씩하게
잘 견디며 잘 살아가는 아내의 친구이자 촌부와는
갑장이라고 하며 친구처럼 지내는 이여사님이다.
우리 인연은 오래전 서로가 처녀, 총각이던 젊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보다 1년 빨리 결혼을
했고 그 이후로 줄곧 만남을 이어오고는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친형 그 이상이었던 형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들 돌보시며 딸, 사위와
함께 잘 살아가시는 이여사님 모습이 감동이다.
만나자마자 두 아짐씨는 어찌나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가는지 몰랐다. 이렇게 할말이 너무나 많은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싶어 바라보는 촌부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괜시리 죄인처럼 여겨졌다.
멀리 산골에서 온 친구라고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마치 친정 엄마 아님 언니처럼 말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점심식사는 섬놈 출신인 촌부가 좋아하는 것으로
먹자고 하여 회전초밥 스시집에서 정말 맛있게
너무 잘 먹었다. 얼마만에 가본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 광고회사 시절에 ㅈ대표와 다녔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이여사님! 너무너무나 감사합니다.
식사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언제 만나도 할말은 끝없다.
이런 모습, 이런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친구간의
정이 아닌가 싶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간
만남, 가까이 산다면 자주 가질 수 있을 것인데...
다음에 평창이든 대구이든 함께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마음 달래며 헤어져야 했다. 주차장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시는 이여사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내는 눈물을 찔끔거려고 촌부 또한 울컥
했다. 형님이 계셨더라면 하는 마음과 씩씩하게
늠늠하게 아픔과 슬픔을 마음속에 꾹꾹 숨겨두고
잘 지내시는 모습이 안스럽고 안타까워서...
친근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오는 길, 원주에 들려
자동차 오일을 교환하고 대형마트에서 잠시 쇼핑
하고 집에 왔더니 저녁 7시반이 넘었다. 즐겁고
좋은 만남을 갖게 해주신 이여사님께 감사하다.
참, 처제가 챙겨주신 마음에 감사하다고 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