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7일 맑다가 소나기
오늘 볕이 참 좋더라.
한때는 을지로입구의 자동차 지붕 위에 반짝이던 햇볕이 진해 바다 에서 환시로 보이더니
반대로 오늘 배상혁이 보러 근 십리길을 걸어가던 강남의 자동차 홍수 속에서
파도가 보이더구나.
뭔가 되게 그리웠나보다.
진해앞바다 공중화장실에 대가리 박고 고향의 봄을 부를 때는
대우에 다니던 시절 바삐 오가며 을지로입구 충북은행 앞 횡단보도 에서 바라보던
자동차 위에 내리쬐던 햇빛이 그리웠고
나이 오십에 때거리 고민까지 해야 하는 요즘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고참이 휘두르는 5파운드 앞에 엉덩이 살로 때우기만 하면 되는
해병대 복무 시절 50분 과업 후 10분 쉬는 시간에
연병장에 마주한 진해앞바다를 향해 한꺼번에 물건들을 꺼내놓고 쉬~ 를 하면서 바라보던 파도마루마다 반짝이던 7월 신병 훈련소의 햇빛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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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을 향해 “000님 약 나왔습니다 육만사천원입니다”,
때론 몇천몇백원 이라고 하면서 생산적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를
입내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마주 바라보지 못하고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리는 십리길을 휘적거리며 다시 되돌아오는데
교육문화회관 지나 양재천 다리 위에서
어릴 적에 먹었던 10원짜리 삼립 크림빵이
500원이나 줬는데도 어찌나 작아 보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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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책상 하나 내준 사무실로 돌아와 학교 다닐 때 읽었던 키에르케고오르의 절망을
한동안 어렴풋이 떠올리다가
다시 인터넷 인크루트 사이트에 들어가 혹시라도 새로운 기업이
내 이력서를 열람한 데가 있나 보고, 채용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월급은 작아도 좋으니 자녀 학자금과 의료보험이 있다면 똥지게는 못지랴 하면서…
한 석달 한달에 7-8일정도 야간 12시간에 시간당 4,500원 받는 노동일을 왕복 4시간
씩 걸려서 다니면서 “오늘은 일이 있으려나?”
그래도 일 하는 게 마음에 들었던지 일거리만 있으면 반드시 내게 연락을 하겠다는데
그것도 감지덕지라고…
습관상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잊어버리고 싶은 게 비중이 더 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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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길을 가다가 도로가에 떨어진 신문지나 보루박스들이 행여나 차량에
방해가 될 세라 매봉터널 매캐한 매연구렁이 속에서도 주워 나오는데
우리 집 마누라는 제발 좀 내게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관여하지 말라고, 누가 알아주냐고..
그런 일로 아마 열댓 번도 더 다투었을게다.
때로는 봉변 당하는 부녀자 구해준다고 다쳐가면서..
태생이 그런걸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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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스무 댓 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데
행복한 사람들이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책임의식이 없거나.
울어라. 사람들아. 눈물을 보이든, 아니면 눈물을 억누르고 소리를 지르든.
그러면 흐려져가는 시야나 고막 속에서 용기가 생긴다.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노동을 하는 동안에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줄곧 돌아가는 기계소리에 거의 태반은 묻혀 없어지는 속에서
금강에 살으리랏다, The Boxer 에서부터 우리 집 작은 녀석 어렸을 때 아직 뜻도 모를
터인데 불러주기만 하면 울먹거리던 엄마가 섬마을에 까지 수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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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 이웃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길거리에서 혹시 뭐 떨어진 거라도
있나 하고 돌아다니는데, 북한에 수해가 났다고 인류애를 찾고 있단다.
그 사람들, 또는 그 이름 내세우는 단체들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억울한걸 감추지 못하는 것도 내 맘이다.
마치 입술이 자주 부르튼다고 또는 부르텄던 입술이 아문다고
별명을 부르터스조 나 아무러스조 라고 불러주던 직장이 괜히 지금에 와서야
억울한 것처럼.
입술이 괜히 부르트고 아물랴.
하여간 지금까지도 야간 12시간씩 꼬박 일하면서 별로 피곤한걸 못 느끼는게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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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이 바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에 어떤 친구가 고기 많이 먹으라면서 “눈물 젖은 빵을 씹어 봤으니 잘 될거야”
하더라만은…
옳게 살겠다고, 바르게 살겠다고,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나와 내 가족만 돌아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아내와 다투어 가면서도 굳게 버티어 왔는데.
이젠,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한 켠으로 이해가 되어간다.
그러나 그것도 태생 탓에 장발장 흉내도 못 내지만.
아니면 나도 모르는사이 장발장보다 더 나쁘게 불리워질지도 모르고…
더 나이가 들어 나와 아내는 제로가 될지라도 이제 고등학교 다니는 두 녀석
잘 기르자는 건 합의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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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쟁이 현철이하고, 내가 보기론 드문 브레이너 승연이가 홈피에 글 올려보라기에
나서기 좋아했던 비 주류가 한 줄 올린다.
누가 내 땅 좀 사 다오 !
오늘 볕이 참 좋더라.
한때는 을지로입구의 자동차 지붕 위에 반짝이던 햇볕이 진해 바다 에서 환시로 보이더니
반대로 오늘 배상혁이 보러 근 십리길을 걸어가던 강남의 자동차 홍수 속에서
파도가 보이더구나.
뭔가 되게 그리웠나보다.
진해앞바다 공중화장실에 대가리 박고 고향의 봄을 부를 때는
대우에 다니던 시절 바삐 오가며 을지로입구 충북은행 앞 횡단보도 에서 바라보던
자동차 위에 내리쬐던 햇빛이 그리웠고
나이 오십에 때거리 고민까지 해야 하는 요즘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고참이 휘두르는 5파운드 앞에 엉덩이 살로 때우기만 하면 되는
해병대 복무 시절 50분 과업 후 10분 쉬는 시간에
연병장에 마주한 진해앞바다를 향해 한꺼번에 물건들을 꺼내놓고 쉬~ 를 하면서 바라보던 파도마루마다 반짝이던 7월 신병 훈련소의 햇빛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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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을 향해 “000님 약 나왔습니다 육만사천원입니다”,
때론 몇천몇백원 이라고 하면서 생산적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를
입내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마주 바라보지 못하고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리는 십리길을 휘적거리며 다시 되돌아오는데
교육문화회관 지나 양재천 다리 위에서
어릴 적에 먹었던 10원짜리 삼립 크림빵이
500원이나 줬는데도 어찌나 작아 보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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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책상 하나 내준 사무실로 돌아와 학교 다닐 때 읽었던 키에르케고오르의 절망을
한동안 어렴풋이 떠올리다가
다시 인터넷 인크루트 사이트에 들어가 혹시라도 새로운 기업이
내 이력서를 열람한 데가 있나 보고, 채용정보를 샅샅이 뒤졌다.
월급은 작아도 좋으니 자녀 학자금과 의료보험이 있다면 똥지게는 못지랴 하면서…
한 석달 한달에 7-8일정도 야간 12시간에 시간당 4,500원 받는 노동일을 왕복 4시간
씩 걸려서 다니면서 “오늘은 일이 있으려나?”
그래도 일 하는 게 마음에 들었던지 일거리만 있으면 반드시 내게 연락을 하겠다는데
그것도 감지덕지라고…
습관상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잊어버리고 싶은 게 비중이 더 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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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길을 가다가 도로가에 떨어진 신문지나 보루박스들이 행여나 차량에
방해가 될 세라 매봉터널 매캐한 매연구렁이 속에서도 주워 나오는데
우리 집 마누라는 제발 좀 내게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관여하지 말라고, 누가 알아주냐고..
그런 일로 아마 열댓 번도 더 다투었을게다.
때로는 봉변 당하는 부녀자 구해준다고 다쳐가면서..
태생이 그런걸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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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스무 댓 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데
행복한 사람들이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책임의식이 없거나.
울어라. 사람들아. 눈물을 보이든, 아니면 눈물을 억누르고 소리를 지르든.
그러면 흐려져가는 시야나 고막 속에서 용기가 생긴다.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노동을 하는 동안에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줄곧 돌아가는 기계소리에 거의 태반은 묻혀 없어지는 속에서
금강에 살으리랏다, The Boxer 에서부터 우리 집 작은 녀석 어렸을 때 아직 뜻도 모를
터인데 불러주기만 하면 울먹거리던 엄마가 섬마을에 까지 수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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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 이웃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길거리에서 혹시 뭐 떨어진 거라도
있나 하고 돌아다니는데, 북한에 수해가 났다고 인류애를 찾고 있단다.
그 사람들, 또는 그 이름 내세우는 단체들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억울한걸 감추지 못하는 것도 내 맘이다.
마치 입술이 자주 부르튼다고 또는 부르텄던 입술이 아문다고
별명을 부르터스조 나 아무러스조 라고 불러주던 직장이 괜히 지금에 와서야
억울한 것처럼.
입술이 괜히 부르트고 아물랴.
하여간 지금까지도 야간 12시간씩 꼬박 일하면서 별로 피곤한걸 못 느끼는게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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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것이 바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에 어떤 친구가 고기 많이 먹으라면서 “눈물 젖은 빵을 씹어 봤으니 잘 될거야”
하더라만은…
옳게 살겠다고, 바르게 살겠다고, 그런데 신경 쓰지 말고 나와 내 가족만 돌아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아내와 다투어 가면서도 굳게 버티어 왔는데.
이젠, 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한 켠으로 이해가 되어간다.
그러나 그것도 태생 탓에 장발장 흉내도 못 내지만.
아니면 나도 모르는사이 장발장보다 더 나쁘게 불리워질지도 모르고…
더 나이가 들어 나와 아내는 제로가 될지라도 이제 고등학교 다니는 두 녀석
잘 기르자는 건 합의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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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쟁이 현철이하고, 내가 보기론 드문 브레이너 승연이가 홈피에 글 올려보라기에
나서기 좋아했던 비 주류가 한 줄 올린다.
누가 내 땅 좀 사 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