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식물원 마지막 출근
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甲辰年 음력 동짓달 스무날
며칠간 한파주의보가 내려지고 추위가 심했다.
오늘은 숨고르기를 하는지 기온이 많이 올라가
영하 9도에 머문다. 그래도 느낌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만 같다. 그런데 또 눈소식이 있다. 오는
새벽 시작될 눈은 내일 오후까지 내릴 것이라고
한다. 내일은 마을 대동회가 있는 날인데...
이래저래 또 한해가 간다.
오늘 시니어클럽 일, 식물원 마지막 출근이다.
사계절을 다 거치고보니 문득 생각나는 글귀,
자연의 질서와 순환에 대한 것을 뜻하며,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잘 마무리 하라는 것.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춘생하장 추수동장(春生夏長 秋收冬藏)
'봄은 만물을 낳고 여름에는 자라며,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저장한다'
♧순자(筍子)의 왕제편(王制篇)
춘경하운 추수동장(春耕夏耘 秋收冬藏)
'봄에는 밭을 갈고 여름에 김을 매며,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 저장한다'
지난 봄날, 4월 7일 시니어클럽 일을 시작했다.
식물원에 배치되어 첫 출근을 했었다. 10명의
시니어들, 그 중에 나이 순으로 여덟 번째였다.
놀랬다. 팔순 형님부터 나머지는 대부분 70대,
아래로 65세 둘이라 촌부는 젊은 축에 들었다.
다들 젊은 시절엔 한가닥씩 했던 사람들이란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뿐 나이를 떠나 뭔가 자꾸
움직이며 활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듯한 모습들이라서 정말 멋지고 보기가 좋았다.
시니어들에게 주어졌던 봄날의 일은 잡초뽑기,
평창 산골의 4월은 초봄이라 자생식물원 화초는
겨우 고개 내밀고 있는 시기인데 이미 잡초들은
무성했다. 식물원의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엄청난 꽃밭의 잡초를 뽑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봄날 햇볕은 꽤 따가웠다.
그래도 우리 시니어들은 호미를 들고 참 열심히
잡초를 뽑았다. 재밌었다. 서로 살아오는 동안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10명의 다양한 분야는
이야기거리도 너무나 각양각색 수없이 많았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새롭게 맺어진 인연들이긴
하지만 살아온 연륜이 있어 그런지 금새 친해져
자기보다 동료를 먼저 챙기는 모습이 참 좋았다.
사실 시니어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단순 노동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자생하는 야생화 꽃밭에서 잡초뽑는 일을 주로
했다. 촌부에겐 너무 안성맞춤인 그런 일이었다.
적성에 맞고 취미도 살리는 야생화 꽃밭에서의
일은 그야말로 일이라기보다 꽃가꾸기 취미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봄에 시작,
여름내내 그 일을 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뿜는
폭염의 한여름에는 아침일찍 더워지기전 일을
했다. 시니어들이라서 땡볕에서 일하게 하지는
않았다. 여름 막바지가 되어서야 그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워낙 넓은 곳이라서...
가을에 접어들면서 구성원의 변화가 생겼다.
80세 큰형님이 그만 두시고 70대 중반 형님이
새로 들어오자마자 4명은 인근 국립공원으로
옮겨가고 나머지 6명은 2개조로 분리하여 일을
하였다. 월, 수, 금(오전)과 화, 목, 금(오후)으로
하여 지금껏 일해왔다. 가을에는 낙엽치우기와
마른 꽃대 정리를 주로 했다. 그 일 또한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낙엽을 쓸어 마대에 담아
퇴비장으로 옮기고 마른 꽃대도 묶어 퇴비장에
옮겨놓았다. 겨울에 접어드는 시기까지 그 일을
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일이 많지는 않다.
제설작업외는 별다른 일이 없어 한결 수월했다.
이제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년 3월에
또다시 시작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겨울방학인 셈이다. 70여일간의 겨울방학이다.
시니어들이라서 겨울이 길고 추운 이곳 사정상
위험해 쉬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글귀를 우리 시니어에
알맞게 이렇게 바꿔보았다.
춘구하운 추엽동휴(春竘夏耘 秋葉冬休)
'봄에는 밭을 다듬고 여름에 김을 매며,
가을에는 낙엽쓸고 겨울에는 쉼을 한다'
어찌되었거나 올해는 시니어클럽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인연들도 만났고 취미활동하는 것 처럼
재밌게 일을 할 수 있었기에 보람있고 즐거웠다.
내년에도 계속하여 식물원에 배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촌부의 바람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