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뜻깊고 좋았던 긴 하루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甲辰年 음력 시월 열이튿날
서리 대신 이슬이 내려 꽤 촉촉한 아침이다.
뿐만아니라 기온도 영상 6도까지 쑤욱 올라
11월 중순 날씨답지 않게 상당히 포근하다.
옅은 안개가 끼어 마치 봄날을 연상케 한다.
이 산골은 겨울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변화가 여느해와는 달리 꽤 심상찮다.
우리네 서민들이야 겨울이 따뜻하면 살기에
좋긴 하지만 자연의 섭리, 자연의 이치가 좀
어긋나는 듯함이라서 염려스럽기는 하다.
어제 이른 아침, 아내는 걱정스런 눈치였다.
전날 심한 배탈로 탈진상태까지 갔었던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여느날과 다름
없이 자고일어나서 바로 일기쓰는 것을 보며
"괜찮은 갑네? 아버님께서 큰아들이 제사에
못올까봐 돌봐주신 모양이야! 그런거 맞제?"
라고 하며 안심하는 것 같았다. 전날 같아서는
정말로 아무곳에도 못갈 것 같을 만큼 힘들어
불효를 할 뻔했으니 아내도 걱정되었던 갑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산골집을 나섰다.
어제는 아버님 16주기 기일이었다.
남들이 뭐라하든 말든 우리는 집에서 지내는
전통적인 기제사 대신 절에 위패를 모셔두고
법회형식으로 지내는 종교식을 택해 지낸다.
뿐만아니라 아버님 기일에 맞춰 어머님까지
함께 통합하여 모시고 있다. 5년전 어머님이
세상 버리신 그해 아우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물었다. 맏이인 내 생각은 전통적인 제사보다
현실에 맞게 고인을 추억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님
기일에 맞춰 위패를 모셔둔 절에서 종교식을
택해 모시기로 모두 다 합의를 했다. 번거롭게
제사음식 준비하는 부담도 덜고 멀리 강원도
산골까지 아우들이 오고가는 번잡함도 덜어줄
생각이었는데 아우들이 모두 잘 따라주었다.
대신 그날 만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함께
모여 부모님을 추억하며 좋은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강제성은 없으니 각자 알아서 하기로...
전통적 예법에는 어긋나는 짓(?)이긴 하지만
우리들 2세들에게도 참석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들이 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불교식 법회형식 기제사를
모시고 나서 함께 모여 식사를 하거나 다과를
하며 고인을 추억하며 형제들이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을 다들 좋아했다. 옛어르신들이 하신
말씀,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살아가게 마련'
이라는 그 말이 맞는 말임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벌써 5년을 이런 식으로
기제사를 모시고 있다. 다만 명절인 설과 추석
두 번은 우리집에서 차례를 모시고 있다. 요즘
제사문화는 현실에 맞게 지내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라며...
어제 인천 용화선원에서 우리 부부와 막내네
부부가 아버님 16주기 기제사에 참석했다.
둘째인 남동생네는 사업상 급한 일이 있었고,
큰여동생은 병원 입원중이라 참석을 못했다.
그래도 맏이와 막내 부부가 기제사를 모실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법회를 마친 다음에
부근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며 부모님 생전의 추억을 하는 시간이라
좋았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이럴때가
아니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는 현실,
그래서 우리는 이날 만큼은 가능한 시간을 내
만남을 통해 형제간의 정을 나누면서 부모님을
추억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는 길에 장모님과 처남이 잠들있는 용인의
수목원에 들렸다. 내일이 장모님 2주기 기일,
그날 또 올라갈 수가 없어 잠시 들려 뵙고 올
생각이었다. 때마침 수원에 있는 아들 녀석이
오겠다고 했다. 제대로 차려간 제수음식 없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단감과 호두과자, 생수만
수목장 산소앞에 놓고서 절을 했다. 아내는 또
울먹였다. 제대로 제사도 못지내드리는 마음이
꽤 죄스러웠던 모양이다. 얼마전 처남 기일에
다녀왔지만 갈 때마다 아내는 눈물 바람이다.
사실 아내는 맏며느리, 맏딸로 양가 부모님께
최선을 다한 효부요, 효녀이다. 그렇긴 하지만
어르신들 생전에 잘 해드린 것 보다 못해드린
게 더 많아 죄스럽고 마음 아프다며 울먹인다.
모처럼 만난 아들과 함께 셋이 나란히 앉아서
장모님을 추억하며 잠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잠시 보고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또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저녁때가 다 되어 산골집에
도착했다. 긴 하루, 뜻깊은 하루였다고 할까?
아내가 절에서 헤어질때 막내가 전해준 것을
풀어보더니 놀라는 것이었다. 또 선물을 잔뜩
챙겨준 것이다. 막내네 앞마당 감나무에서 딴
단감을 잔뜩 넣었고 아내의 화장품과 스카프,
양말까지 챙겨준 것이 아닌가? 좋아하는 아내,
아내도 천상 여자다. 자기 돈주고는 사 본적이
없는 고급 화장품이고 너무 멋진 스카프라며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부터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보내던 그때 그
막내 시누이가 이젠 큰올케를 챙기는 모습으로
장성해 이렇게 감동을 안겨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며 감격스러워했다. 어제는 이래저래 뜻깊고
좋았던 긴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