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고추농사 짓지말자!
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음력 癸卯年 팔월 스무여드렛날
이른 아침 기온 영상 3.5도,
오늘도 서리와 안개와 함께하는 아침이다.
"가을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설익은 상태로
줄행랑 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라구?"
찬공기가 몰려오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10월도 어느새 중반으로 접어든다.
마을에 내려가보니 가을걷이 끝낸 빈밭들이
많이 보이고 훵한 느낌에다 쓸쓸함이 감돈다.
부지런한 농부의 밭에는 내년 봄 거름으로 쓸
요량으로 뿌려놓은 호밀, 이미 싹이 올라왔다.
드디어 붉은고추 말리는 긴 대장정을 마쳤다.
어제 아침 건조기에서 마지막 고추를 꺼냈다.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는 아내에게 촌부는
그동안 너무 수고했다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이제 한번 더 점검해 고춧가루 빻으면 끝이다.
가을걷이 모두 다 끝낸 고추밭은 밭설거지를
기다리고 있다. 많은 것을 다 내어준 밭이기에
어서빨리 홀가분하게 정리해주어 내년 봄까지
푹 쉬게 해줘야 하는 것이 주인장의 예의이며
도리이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하루에 못끝냈다.
아침에 보건진료소에서 시니어 건강프로젝트
건강검진을 하며 혈액채취를 여섯 개나 했고
거기에다 독감예방접종까지 하고 왔다. 그래서
아내가 제발 일하지 말고 쉬라고 했던 것인데
아내 말 듣지않고 밭일을 하여 뒈지게 혼났다.
아내가 "내년부터는 고추농사 짓지말자!"라고
했다. 농사짓느라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농사의 80%가 자급자족하는 고추농사...
이제 우리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싶다. 그래서
아우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냥 사먹자고 말했다.
그동안 기왕에 있는 밭이라서 놀릴 수가 없어
쌈박쌈박, 사부작사부작 재미삼아서 즐기면서
농사를 짓자며 시작했던 것인데 이제는 너무나
버겁고 되알져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겠다.
내년이면 아내도 촌부도 70이 바로 목전이라...
아내의 그 말이 오히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우리 부부 노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한번쯤 생각하며 되짚어보는 계기가 된 것이라
여겨진다. 나이들어 뒈지게 일만 하다가 가는 것
보다 보람차게 살다 가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