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간단히 먹읍시다!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음력 癸卯年 정월 열사흗날
잠에서 깬 아내가 2층에서 내려오며 하는 말,
"오늘은 날씨가 어떼? 몇 도야? 추워?"라고...
바로 대답을 해야지 머뭇거리면 호통을 칠 테니,
"눈소식 없는데 잔뜩 흐리네. 영하 10도, 안 추워!"
라고 했다. 그랬더니 엉뚱하게 웃기는 말을 했다.
"눈, 안 내릴거야! 하늘에 재고가 동이 났을 테니!"
"자네가 그걸 우찌 아노? 하늘에서 연락왔더나?"
"여보시오! 1월 그렇게 내렸으니 재고 바닥이지!"
이렇게 하루의 시작을 웃음으로 함께한 산골 부부...
어제는 봉평 5일장날이었다.
아내와 처제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갔다.
정월 대보름맞이 대목장이라서 장골목에는 행인이
꽤 많았다. 촌부는 대형마트보다 5일마다 열리는
이 시골장이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것 같아서 좋다.
마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더 정겹고, 더 재밌다고
할까? 실내에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 된 마트와는
달리 조금은 어수선하고 복잡한 듯하지만 그 모습,
그 광경 속에는 따스한 정이 숨어있기 때문일 게다.
장마다 나오는 상인들과 이미 오랫동안 만나다보니
서로를 잘 안다. 물건 구입을 안할지라도 지나가며
눈인사를 나누곤 한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닐까 싶다. 그게 정이고 사람사는 참모습이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장날이면 보며 만나는 상인들과
인사를 나루며 장을 봐왔다. 오랜만에 이웃 마을의
형님과 형수님을 만나서 반갑게 손을 붙잡고 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래서 산골의 5일장은 정겹다.
아내가 난롯불 위에다 뭔가를 얹어놓은 것이 보여
봤더니 식은 밥을 후라이팬에 넣고서 펼쳐 놓았다.
누룽지를 만드는 것이다. 뭐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아내의 알뜰함이라고 할까? 어차피 난롯불을
지펴야 하는 것이고 간단히 뎁히거나 끓이는 것이
있으면 난롯불을 이용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식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어 놓으면 여러가지로
활용을 할 수가 있다며 이따금씩 만드는 아내이다.
밥맛이 없을 때나 백숙을 끓일때 누룽지를 넣으면
아주 좋은 식재료가 되는 것이다. 운동을 나가면서
"누룽지 타지않게 앞뒤를 잘 뒤집어 주시오!"라고
하여 꼼짝없이 난롯불 앞에서 보초를 서야했다.
저녁식사를 좀 간단히 하자는 아내, 갑자기 뭔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촌부 식습관은 국물이
있어야 한다. 국이나 찌개는 거의 밥상에 빠지지를
않는다. 아내가 간단히 먹자는 건 국물없이 먹자는
의미다. 하긴 매 끼니마다 식재를 준비하고 끓이는
것이 꽤나 번거롭기는 할 것이다. 그래서 아내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어쩌면 국물을 끓이는 것보다도 더
손이 많은 음식을 준비했다. 딱히 제목을 붙이는 게
마땅찮지만 '채소김쌈'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다.
쌀가루로 만든 월남쌈 대신 김을 이용한 것이라서
재미삼아 붙여본 것이다. 파프리카 두 종류, 양상추,
오이, 게맛살, 달걀지단에 아내가 손수 만든 소스가
전부다. 그런데 맛이 일품이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까지... 간만에 국물이 없는
저녁식사를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이참에 긴 세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던 촌부의 식습관도 변화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다.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과 나트륨 섭취도 줄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