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꺼내고, 나르고, 쌓고...
2021년 10월 24일 일요일
음력 辛丑年 구월 열아흐렛날
이제 더 이상 따뜻한 날씨를 기대하는 것은 촌부의
욕심을 부리는 마음이겠지 싶다. 가을이란 계절은
소리소문도 없이 만끽하고 싶었던 모습,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니 하는 말이다. 이제 이른 아침으론
눈이 내린 듯한 모습으로 하얗게 덮는 서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오늘 아침도 영하 5도에다
서리가 내려 지붕은 하얗고 땅바닥에는 서걱서걱
서릿발이 솟았다. 이런 날씨이고 모습인데 어떻게
가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산골은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닐 것 같다.
어찌되었거나 이제 내년 봄까지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 난롯불 지피기를 시작한다.
아침, 저녁으로 난롯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바로 땔감나무 장작이다. 일년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함이 없는 산골의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제재소에서 자투리 토막나무를 톤백으로 10개나
구입하였다. 이제 크기가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은
나무를 장작집에 쌓아두어야 한다. 어제부터 그 일,
나무쌓기를 시작했다. 아내는 톤백에서 크고 작은
나무를 꺼내고 촌부는 나르고 쌓고... 거의 대부분
사각형 형태라서 쌓기는 수월하긴 하지만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마치 퍼즐쌓기를 하듯이 잘 맞춰서
쌓아야 한다. 장작이나 이런 토막나무를 장작집에
쌓는 것도 나름의 방법, 요령이 필요하다고 할까?
우선 지난해 가을과 봄날에 단지 곳곳에서 전지를
하여 말린 나무를 장작크기로 토막낸 잘 마른 것은
꺼내쓰기 쉽게 데크로 옮겼다. 그 다음 톤백을 풀어
장작집에 깔아놓은 나무파렛트 위에 쌓기 시작했다.
밑에는 가능한 커다랗고 두껍고 길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걸 쌓고, 올라갈수록 크기가 자그맣고 짧고
무게가 적게 나가는 것으로 쌓아야 한다. 어느해는
구별없이 그냥 마구 쌓았다가 무너지는 바람에 또
쌓아야 하는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부터는 신중을
기해 쌓는다. 요즘 허리병으로 치료를 받는 중이라
무리하게 일을 하지는 않는다. 평소보다는 느리게
천천히 하고 있다. 아내의 걱정에 오전에만 일했다.
쌓여가는 나무토막을 보며 엊그제 조카 딸내미가
말했듯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예전 어릴적 서울에
살던 때가 생각난다.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쌀 한 가마니 들여놓고 연탄광에 연탄을 가득 채워
놓고 김장을 마친 어머님이 부자가 된 느낌이라고
하셨던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서민들이 긴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서는 어디 이만한 게 있었을까?
이제 가을걷이도 끝났고 땔감나무도 충분히 있고
며칠후 김장만 하게 되면 겨울채비는 끝나게 된다.
아내의 간곡한 당부대로 토막나무 쌓는 일은 절대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시나브로 하려고 한다.
늦은 오후, 모처럼 힘든 일 하느라 그런지 아내가
낮잠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살며시 밖으로 나와서
밭으로 나갔다. 김장을 할 때까지 저녁때는 천막을
덮어놓고 낮에는 걷어놓는 가을 채소밭의 천막을
덮어놓았다. 집으로 들어오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고춧대를 뽑아서 밭가에 놓아둔 것이 보였다. 순간
퇴비장으로 옮겨놓고 싶었다. 허리에 무리가 가면
안되니까 조금씩 나르다보니 시간이 꽤나 지났다.
거의 끝날 무렵에 아내가 나와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렇잖아도 한 소리 들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허리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그게
뭐하는 짓이냐며 호통을 쳤다. 조금씩 했으니 걱정
말라는 말로 대신했으나 아내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퇴비장으로 마저 다 옮겨놓았더니 산더미
처럼 쌓였다. 썩어 퇴비가 되어 다시 밭으로 오게
될 것이고 깔끔하게 정리가 된 밭을 보니 개운했다.
아내에게 혼쭐이 나긴 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