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때아닌 김장을 담그며...
2021년 9월 29일 수요일
음력 辛丑年 팔월 스무사흗날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옛날부터 가을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좋게 말을
한다면 가을이란 계절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는
비라고 할까? 도시에서야 가을비가 오든말든 별로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겠지만 농촌을 물론 산촌,
어촌에서는 가을비를 달갑게 생각하지않고 쓸모가
없다며 싫어하는 비다. 농작물들이 잘 익어야 하고
말려야 하며, 과일을 비롯한 열매들이 익어야 하고,
어촌에서는 조업은 물론 건어물을 말리는 것에도
방해가 되고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간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자연현상이라서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생일에 소리샘 팬클럽 딸내미가 모바일로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서울 서래마을 유명 쉐프가 만든
요리 함박스테이크 밀키드... 덕분에 이 산골집에서
맛있는 서양음식을 즐겼다. 보내준 딸내미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다. 아내도 모처럼 칼질 해본다면서
싱글벙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좋았고 흐뭇했다.
음식과는 안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이웃 마을 형님댁
머루로 마무리를 했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 좋아져
산골살이를 하면서도 서울의 레스토랑 음식을 먹게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또한 딸이 없는 촌부가 딸내미의 효도를 받아보는
느낌이 들어 딸 가진 부모의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한다. 고마워~♡ 딸내미~~~
어젯밤에는 때아닌 김장을 담갔다. 이웃 마을 밭을
지나다가 속이 꽉찬 실한 배추를 몇 포기 얻어왔다.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 사람이 김치 욕심은 남달리
많은 아내가 지난해 담근 묵우지가 곧 동이 날 것
같은데 때마침 잘되었다며 포기김치를 담근다면서
좋아했다. 배추 절여놓은 것을 보니까 도시 사람들
김장 수준이다. 이번엔 시험삼아 무우채를 줄이고
대신 무우를 갈아 즙으로 내서 김치소를 만들었다.
너저분한 재래방법보다 깔끔한 것 같다며 맛있으면
이젠 이 방법으로 김치를 담그겠다고 했다. 오래전
고향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김장 김치를 담갔던 것
같다. 어쩌면 옛날 방식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절인 배추 물기 짜주는 것을 비롯하여 아내를 도와
때아닌 김장을 담그다가 문득 배추쌈이 생각났다.
노란 배추 고갱이에 김치소를 넣어 배추쌈을 만들
한 쌈했더니 순간 소주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닌가?
요즘은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을 즐기는 촌부,
안주감을 보면 술 생각이 나는 버릇은 변함이 없다.
소주 한잔 입에 털어넣고 배추쌈 한 볼테기 하면서
"이 맛이다, 이 맛이야! 사는 거 뭐 있어? 이런 재미,
이런 맛으로 사는 것이지!"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