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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늘 오늘만 같아라!

 

2021년 8월 14일 토요일

음력 辛丑年 칠월 초이렛날 

 

아침 기온 16도, 꽤 선선해진 아침 공기가 참 좋다.

이제 여름의 절정이었던 8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어

폭염도 한풀 꺾였다. 이슬이 내려 촉촉하고 물기에

더 싱싱해 생기가 넘치는 듯한 밭작물을 둘러보는

촌부의 마음도 흡족하여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기전 아내와 하루를 정리하는

대화를 하다가 서로 미리 짜기라도 한듯이 말했다.

"늘 오늘만 같아라!"라고 하자마자 아내도 웃으면서

"오늘만 같으면 살맛 나겠네!"라고 하여 그 밤중에

한바탕 웃음보를 터트렸다. "사는 거 뭐 있나? 그냥

이리 살모 좋은 아인가 가베? 안 그렇나?"라고 하자

아내 또한 "우리 오늘처럼 욕심일랑 내지말고 있는

것에, 주어지는 만큼에 만족하며 살아가자구요!"

이렇게 우리는 잘 늙어가고 잘 익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둘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회복을 하고

있어 그 무엇보다 좋다. 살면서 아프지않고 사는 것,

바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으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산골살이를 하는

우리 부부가 살맛이 난다고 했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자!

 

둘째네가 와 있어 이런저런 일도 일이지만 힘들었던

아내에게 큰 힘을 주며 보살펴 준 처제의 도움으로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 너무 고맙고 기쁘고 기분좋다.

혼자 끙끙 앓으며 누워만 있었으면 이번처럼 회복이

빠르진 못했을 텐데... 뿐만 아니라 촌부도 마음놓고

바깥일을 못했을 것은 뻔하다. 그래서 이번 둘째네가

산골집에 다니러 온 것은 우리 부부에겐 고마움이다.

처제가 아내와 함께 있는 동안 동서와 함께 밭에서

열무와 얼가리를 뽑고 몇 개 안되지만 비트도 뽑아

손수레에 실었더니 가득이었다. 벌써 8월도 중순에

접어들어 이 자리에 김장용 배추와 청갓을 심으려고

준비를 한 것이다. 많은 일은 아니지만 둘이서 하여

훨씬 수월했고 오랜만에 이서방에게도 옛 생각나게

하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뽑은 채소를 손수레째 카페에 갖다놓고 올라오는데

아내가 조카 딸내미가 모바일로 케익을 보내왔으니

인근 리조트 휘닉스 평창에 있는 빵집에 가서 어서

바꿔오라 하여 동서와 둘이 바람도 쐴 겸 다녀왔다.

큰이모가 아파 입안이 헐어 제대로 밥을 못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드러운 케익을 먹으면 된다며 일부러

보내온 것이다. 큰이모 어서 나아야 한다고 하면서...

녀석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아내도 촌부도 순간

울컥했다.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 것이

구나 싶었다. 늘 말했듯이 이 녀석의 소속은 막내네

이지만 우리 세 집  공동의 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렇게 마음씨 곱고 착하고 예쁜 딸내미인데 코로나

때문에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학교 교사라서 요즘

방학이라 늘 오고 싶어하고 큰이모가 해주는 음식도

먹고싶어 하는데 말이다. 희안하게 어린 녀석이지만

제일 나이가 많은 큰이모가 해주는 음식을 좋아하는

걸 보면 아주 재미난 녀석이다. 조카 딸내미 덕분에

아내도, 촌부도, 둘째네도 모두 흐뭇했다. 참 고맙다!

 

아내와 처제가 카페에 가져다놓은 열무와 얼가리를

다듬고 있는 사이 작은밭과 장작집 사이에 엄청시리

무성한 잡초를 뽑고 있는데 반장님께서 전화를 하여

"건너와! 감자 안 심었지? 밭에서 감자 캐놨으니 좀

 갖다 먹어!"라고 하셨다. 어르신께서 챙겨주시는 그

마음씨가 너무나 감사하여 하던 일을 얼른 팽겨치고

손을 씻고 달려갔다. 세상에 이럴 수가... 감자를 큰

박스에 한가득, 자그마한 알감자를 한 봉다리, 또한

옥수수와 참외까지 주시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요즘 세상에 이런 선물은 드물지 않겠는가 싶었다.

"힘들게 농사를 지으셔서 이렇게 많이 챙겨주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더니만 빙그레 웃으시면서

"뭘 그러나? 얼마 안돼! 자네가 우리에게 하는 것이

 늘 고마워서..."라고 하시며 말을 흐리셨다.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두 분은 참 부지런하게 움직이시며

농사를 짓고 사시는 모습이 늘 감동적이다. 이 분이

촌부의 산골살이 첫 번째 영원한 멘토 어르신이다.

 

저녁무렵 동서와 함께 둘이 반장님댁에서 갖다놓은

김장용 배추 모종 한 판을 심었다. 이 일은 지금껏

아내와 둘이 환상의 복식조가 되어 했었지만 올해는

아내의 건강이 좋지않고 다행히 산골집에 다니러 온

둘째네 덕분에 힘들지 않게 마무리를 했다. 동서는

예전에 함께 살던 때의 기억을 살려 나름 꼼꼼하게

열심히 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손을 놓은지가

오래되어 속도가 드뎠다. 동서가 하는 말이 재밌다.

"형님! 제가 한 그루 심을 때 형님은 세 그루나 심고

 계시네요. 역시 빠르시네요."라며 빙그레 웃었다.

"이 사람아! 20년 세월이 말해주는 것이야!"라고

하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김장용 배추를 동서와 함께 다 심고 씻는데

이번에는 마을 아우가 전화를 했다. 아내와 처제는

저녁준비를 하여 어서 먹자고 했다. 잠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마을 아우에게 자네 친구도 와있다고

했더니 그러냐며 얼른 올라온다고 하여 함께 식사를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동서보다 한 살이 많긴 해도

오래전부터 둘은 친구로 지내왔다. 오랜만에 친구도

보고 양배추를 뽑았는데 형님네 맛 좀 보라며 갖다

주고 싶어 올라온다고 했다. 아주 커다란 양배추를

두 개씩 양파망에 넣었고 주키니 호박도 다섯 개나

가지고 올라왔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밥상 물린 다음 차를 마시며 또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말 고맙고 정답고 정겨운 아우, 이 아우가

바로 촌부의 산골살이 두 번째 멘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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