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밭뙈기 하나 마련했네!
2021년 8월 7일 토요일
음력 辛丑年 유월 스무아흐렛날
오늘은 절기상으로 입추(立秋)이다. 24절기 중 13
번째, 가을이 시작된다는 뜻인데... 실제 현실에서는
아직도 한여름이다.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이따금씩 한바탕 쏟아놓고
가는 소낙비가 고맙다. 제아무리 강렬한 폭염이라도
입추가 지나고 나면 한풀 꺾이겠지? 그러길 바란다.
그나저나 요즘은 시간이 가는 것도, 세월이 흐르는
것도 모른다.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요일 개념이 사라졌다. 이 또한 관심이
없어진 것이 오래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것도, 요일
바뀌는 것도 산골살이 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알고는 살아야겠지?
오늘부터 일기에 요일도 적어야겠다.
요즘 꽃피는 야생화들 중에 유난히 애처롭게 보이는
꽃이 있다. 그 하나는 물봉선이다. 해마다 분홍색이
많이 보이더니 올해는 노란색 꽃이 핀 녀석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물봉선 꽃은 꼬깔 모양으로 생겨서
예쁘기는 하지만 볼때마다 위태로워 보인다. 아주
가느다란 꽃받침의 이음새가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떨어질 것 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씨앗을 맺을 때까지 잘 붙어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신기하고 오묘하고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든다.
또다른 꽃 하나는 겹삼잎국화다. 노란색의 꽃잎이
겹겹으로 탐스럽게 피는 꽃이다. 꺽다란 키, 줄기는
가느다란 녀석인데 무슨 번식에 대한 욕심이 그리도
많은지 이기지도 못할 정도로 탐스런 꽃을 피운다.
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겸손하다기 보다는 안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혹시
비바람이 불면 빗물을 머금은 꽃이 무거워 쓰러져
자빠지고 심지어는 꺾이기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자식 욕심 때문에 많이 낳아 기르느라 고생을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이야 모두들
너무 아기를 낳지않아 문제지만... 꽃을 관찰하면서
별 이상한 상상을 다하는 촌부, 꽃을 사랑한 나머지
녀석들의 모습이 안스러워 이렇게 생각해본 것이다.
드디어 자그맣지만 어엿한 밭뙈기 하나를 마련했다.
벌써 며칠 몇 날을 틈나는대로 풀을 뽑고, 풀을 베고
그리고 삽질로 파서 뒤집고 괭이로 흙을 잘게 부셔
풀뿌리, 나무뿌리, 잔돌을 골라내는 일을 해왔다.
요즘같은 세상에 완전 원시적인 방법으로 밭갈이를
하는 모습을 누가 봤더라면 조소를 지었을 것이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그 많은 농사를 짓느라 무척이나 고생하셨을 것이다.
큰 논밭은 소를 이용하여 쟁기질을 하고, 쓰레질을
했겠지만 자그마한 텃밭은 거의 삽질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새로 일군 밭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꽃밭이라기 보다는 풀밭이었다. 긴 세월 캐캐
묵은 풀뿌리와 잡목뿌리가 이리저리 뒤엉켜 삽질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동원한 것이 도라지를 캘때
사용하는 뾰족한 도라지삽이다. 베어놓은 풀을 모두
갈고리로 긁어내고 도라지삽으로 대충 흙을 파놓고
그 다음 삽질을 하여 흙을 파서 뒤집었다. 그런 다음
괭이와 갈고리를 이용하여 풀뿌리, 나무뿌리를 골라
내고 평평하게 평탄작업을 하여 마무리를 해놓았다.
그 옛날에 화전민이 야산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어
일구던 방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밭은
올해는 가을 채소를 심어보고 내년부터는 명이나물,
더덕, 잔대 같이 손이 덜 가는 것, 한번 심어놓으면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없는 것을 길러 볼 생각이다.
기왕에 있는 밭이지만 그동안은 묵밭이나 마찬가지
였기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일구어 밭뙈기 하나를
마련하게 되어 뿌듯하다. 밭이 늘면 일도 느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동안 흘린 땀의 결실이라서
마음이 흐뭇하다. 텃밭 하나 마련한 것을 축하라도
하듯이 저녁무렵에 온갖 형상으로 찌푸린 모습이던
하늘에서 소나기를 한바탕 쏟아부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