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고향이 어디세요?
2021년 1월 30일
음력 庚子年 섣달 열여드렛날
아침에 일어나서 현관에 나왔더니 또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기온은 영하 15도, 예보에는 오전에
그칠 것이라고 하는데 워낙 추운 날씨라 얼어붙지
않을까 모르겠다. 자동차는 아랫쪽에 두고 왔으니
다행이지만... 요즘처럼 시도때도 없이 눈도 자주
많이 내리고 추위도 심한 때는 저멀리 남쪽 따뜻한
고향 남해 생각이 자주 나곤 한다. 고향 이야기를
오늘의 화두로 삼아볼까나...
함께 일을 하는 분이 뜬금없이 "고향이 어디세요?"
라고 물었다. 잠시잠깐 '이 분이 왜 그러실까?'라고
생각하다가 "남해입니다."했더니 "남해요? 남해면
남쪽 바다인데 바다가 고향이라구요?"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좀 이상하단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
"남해 바다가 아니고 남해도 섬이 고향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런 섬도 있나요? 몰랐네요."라며 웃었다.
속으로 '이 양반 학교 다닐적에 지리공부를 못했나?'
싶었다. 그러더니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더니만
"아하~ 꽤 큰 섬이네요. 한번도 못가봐서 그만..."
이라고 하며 미안해 하는 눈치였다.
그 분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닐게다. 중학교 시절에
수업 도중 짝꿍과 쪽지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가지고 다니시던 몽둥이로 엉덩이를 몇 대
맞고나서 꿇어앉아 있는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너 이놈 고향이 어디야!"라고 하여 "남해입니다."
라고 했다가 그 몽둥이로 머리를 톡톡 두드리시며
"이놈 봐라! 똑바로 말 못해! 고향이 어디냐니까?"
라고 하셔서 "경남 남해군 서면 우물리입니다!"
라고 했더니 "일어나! 진작 남해군이라고 하지 왜
남해라고 하여 나를 헷갈리게 만들어! 들어가!"라고
하시더니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잔뜩 겁을 먹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그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내가 미안하구나! 사과하마!"
라고 하셔서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사를 꾸벅했다. 선생님께서 어깨를 툭툭치시며
"공부 열심히 해! 수업시간에 딴짓은 하지말고..."
라고 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흔히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창입니다, 영주입니다.'라고 대답하지
'평창군입니다, 영주시입니다.'라고 말하진 않는다.
문제는 '남해'라고 말하면 흔히 동해, 서해, 남해로
구분되는 바다를 일컫는 말과 혼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남해라고
대답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직장 동료분도 그렇고
선생님께서도 오해 아닌 오해를 하시게 된 것이다.
앞으로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남쪽바다 보물섬
남해군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려고 한다.
촌부가 고향 남해군을 떠나온 것은 13살이 되던 해
8월이다. 그러니까 어언 5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대화중에 이따금씩 고향 사투리가 툭
튀어나오곤 한다. 말이란 것이 정말 묘하구나 싶다.
다른 고장 출신들은 잘 모르겠으나 경상도 더구나
남해 출신은 사투리가 심하고 더 오래 남아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촌부의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좋게 말을 한다면
그만큼 애향심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올겨울 들어 유난히 아내와 함께 고향 남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워낙 눈도 많이 와서 고생스럽기도
하고 또한 추위가 심하여 고통을 받는 날이 많아서
따뜻한 고향 남해가 자꾸 떠오르고 그리운 것이다.
그 옛날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물메기탕도 먹고
싶고 큰 생선만 고집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숯불에
맛있게 구워주시던 갈치, 서대, 낭태구이가 오늘
따라 너무나 생각이 나고 많이 그립다.
촌부가 태어나서 열세 살까지 살았던 '경남 남해군
서면 정포리 우물마을'은 '웃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마도 정포리의 윗쪽에 있어 그렇게 부른 것 같다.
그 옛날 촌부가 다녔던 학교, 중현국민학교(폐교)를
중심으로 8개 마을이 한 학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 5개 마을은 바다에 인접해 있고, 나머지
3개 마을은 조금 먼 내륙 마을에 속한다. 8개 마을
중 시간 버스가 들어오지 않았던 가장 오지 마을에
해당하는 산골 마을이 촌부의 고향 우물마을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촌부가 떠나올 당시에는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며 이웃간에 정이 넘치고
산과 들, 냇물이 흐르는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백넘고개, 사암등, 솔등, 안고랑 등 논밭이 있었던
그 지명도 아직 기억이 난다. 듣기만 해도 정겹다.
지금껏 한평생 고향 마을을 지키며 살아오는 친구,
객지에 나갔다가 귀향을 하여 함께 마을을 지키며
마을 발전에 노력하는 친구가 있다. 어려서 함께
자랐던 죽마고우, 이 두 친구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다들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 듣는데...
"석근아, 연자야! 건강하게 잘 살고 있제?"
대한민국 섬 크기로 보면 남해는 제주, 거제, 진도에
이어 네 번째 큰 섬인데 부속 섬 창선을 제외한다면
강화에 이어 다섯 번째 큰 섬이다. 남해는 1읍 9면
222리에 인구는 약 4만 3천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해군은 금산, 망운산을 비롯하여 남해대교, 상주
해수욕장, 미조포구, 가천 다랭이마을, 독일마을 등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이라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그래서 보물섬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이런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서 요즘같은 겨울에는
고향 남해가 더 그리운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