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2020년을 되돌아보며...
2020년 12월 30일
음력 庚子年 동짓달 열엿새날
하늘이 무심하다고 할까, 감사하다고 해야할까?
코로나19로 얼룩진 흔적을 덮어버리고 싶은지
어제 늦은 오후부터 눈을 뿌렸다. 꽤 많이 내렸다.
설상가상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한파까지 겹쳤다.
코로나19는 우리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치유가 되지않은 커다란
상처를 남긴채 2020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65년 세상살이에서 이런 재앙이 있었을까? 없다.
이런 엄청난 재앙속에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많았으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모두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한해를
보내며 소회를 피력해 보려고 한다.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듣도보도 못했던 용어들이
지난 한 해는 눈만 뜨면 우리들 일상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자리를 하였다. 정말 생소한 용어들이었다.
팬데믹, 코호트 격리, 자가격리, 확진자, 유상증자,
역학조사, 전수조사, 비말감염, n차감염, 능동감시,
밀접접촉자, 음압병상, 선별진료소, KF94 마스크,
비대면(언택트), 사회적 거리두기 등등... 하루빨리
이런 용어들이 몹쓸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우리들 일상에서 전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하루빨리, 꼭, 제발, 어서...
우리 부부는 물론 두 처제와 동서는 지난 한 해를
너무나 죄스런 마음으로 지냈다. 누구라도 자식된
도리라면 우리들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장모님을 원주에 있는 요양원에 모셨기
때문이다. 바로 그 다음날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져 지금껏 면회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멀리서
애만 태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양시설에
모신 이후 병환이 크게 진전되지 않으셨다는 것은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던 우리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왔던 그날
이후 아내는 물론이고 촌부는 한동안 거의 눈물로
나날을 지새다시피했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지난 3~5월 사이에 몇 번을 나눠 거의 한달 가까이
무급휴가로 일을 하지못하고 집에서 쉬어야 했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음이었다. 잘
견디며 그 아픈 고비를 넘겼다. 누구나 갖는 고통은
다 같았을 것이다. 28년이란 오랜 직장생활에서도
없었고, 인생 제2막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이때도,
그렇게 힘들었다고 여겨지는 지나간 IMF시대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런 마음의 고통은 우리곁을 자꾸 맴돌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뭐 그다지 별다른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작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속상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야생동물 멧돼지로
인한 피해였다. 몇 해를 길러 올해는 수확을 조금
하려나 했던 뚱딴지(돼지감자)를 멧돼지가 내려와
몽땅 파헤치고 먹어치워 한 톨도 거두지를 못했다.
결국 그 밭의 뚱딴지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멧돼지들 덕분(?)에 일부러
힘들게 삽질을 할 필요도 없이 밭떼기 하나를 그저
마련하게 되었기에 눈개승마, 조선파, 부추를 심어
작지만 새로운 밭을 일구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 한가지의 가슴 아픈 소식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아내의 친구 부군이신 吳兄
께서 병환이 급격이 위중하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부부와는 결혼전부터 젊은 날을 함께 했던 분이라
친형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친분이 너무 돈독했던
분이라서 우리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 우리가 어찌
할 방법도 없으니 더 아팠다. 지난해 6월 아내의
절친한 친구 세 부부가 산골집에 내려와 1박2일을
함께하며 너무나 즐겁게 지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이젠 자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자고 했던 그때의
그 약속을 잊으셨을까? 지난 세월 많은 고생했으니
이제는 옛말 하며 부부가 즐겁게 사셔야 할 나이에
이 무슨 청천벽력인지 모르겠다. 아직은 우리들과
더 어울려야 하는데 말이다. 기적이 있다면 형님께
내려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그 외도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수없이 뒤집어
놓았다. 장인어르신과 부모님, 지난해 먼저 가버린
둘째 여동생과 처남의 기일까지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코로나 시절에 생긴 비대면으로 하였으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몹쓸 바이러스
코로나19는 우리들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뒤죽박죽 뒤집어 놓았다. 이런 난리는 65년 평생
처음 겪는 난리 중에 난리이다.
그렇다고 아프고 슬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쁘고 즐겁고 보람찬 일도
있었다. 뿌듯함에 아내와 함께 미소도 짓고 기쁜
나머지 함박웃음을 웃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절이라고 해도 이따금씩 웃음짓는
일이 생기는 것이 우리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싶다.
오랜 숙원이었던 지붕공사도 마무리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장작집도 손수 새로 지었다.
20년 세월 텃밭농사를 지어오며 올해처럼 대풍을
이룬 적이 없었던 고추농사, 그뿐이 아니고 해마다
태양초로 말린다고 고생하던 아내를 위해 큰맘먹고
고추건조기도 구입을 했으니 장족의 발전을 했다.
이슈거리는 아니지만 그렇게 고양이를 싫어했었던
촌부와 아내가 길냥이에게 장화라는 이름도 짓고
먹이를 챙겨주며 반은 집고양이로 기르고 있는 것
또한 우리가 산골살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끝으로 촌부가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나 하고 싶다.
지금껏 오랜 세월동안 일기를 써왔지만 올해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것은 처음이다. 365일 동안
매일 아침마다 산골살이에서 경험하는 소소하지만
내겐 너무나 소중한 일상이기에 기록을 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건강이 허락했고 또한 나의 정신상태가 아직
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촌부를 있게끔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나를 수필가라는 칭호를 주시고 이끌어
주신 '푸른문학' 이은별 대표님과 임재구 부대표님,
그리고 많은 선후배 문우님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더 열심히 정진하여 마음이 담긴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겠다.
한해 동안에 촌부의 일기를 읽어주시고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힘겨운
코로나19 시절에도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에는 코로나19 없는
세상을 되찾아 미소와 웃음이 떠나지 않는 행복을
함께 나누는 그런 일상이시기를 기원합니다.^^
- 2020년을 보내며, 산골 촌부 李龍植 拜上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