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7월 시작부터 바빴다.
2026년 7월 2일 목요일
음력 丙午年 오월 열여드렛날
잔뜩 흐린 산골의 여름날 아침이다.
장독대 위에도, 야생초 잎파리와 채소 잎사귀도
축축하게 젖어있는 모습이 분명 이슬은 아니다.
아마도 간밤에 잠시잠깐 소나기가 지나간 듯하다.
밤중에 비가 내리면 그 소리를 잠결에도 알아채곤
하는데 어젯밤에는 피곤하여 모르고 잤는가보다.
늦잠에서 깬 오늘 아침의 기온은 13도, 서늘하여
긴팔을 입고 밭에 나가 채소를 살폈다. 이것저것
손볼 일이 많다. 아침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7월이 시작된 어제는 딱히 한 일은 없지만 바빴다.
엿새 쉬고나간 식물원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요즘 우리 시니어들이 하는 일은 거의 정해져있다.
하지만 하루 휴가 낸 촌부는 엿새, 다른 동료들은
나흘을 쉬었기에 밀린 일이 좀 많았다. 식물원의
담당자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사이 많이 변한
꽃과 나무를 살피고 관찰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촌부의 습관이고 버릇이라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부고가 들어왔다.
어릴적 서울 세검정(부암동)에서 살던 때 인근의
평창동에 사셨기에 우리가 평창 고모라고 부르곤
하는 집안 고모님께서 별세를 하셨다는 부고였다.
우리 형제들과 사촌들도 많이 있지만 특히 촌부와
아내 그리고 첫손자라며 아들 녀석을 예뻐하셨다.
그러셨던 고모님이시라 열 일 다 제쳐놓고 아내와
함께 문상을 다녀오기로 했다. 경기도 파주 금촌,
산골집에서 편도 185km 거리라서 참 멀긴 했다.
왕복 370km의 밤길 운전을 했더니 꽤 피곤하다.
고모님은 아버님 고종사촌 아우, 서울에서 이웃에
살았기에 친형제 그 이상이셨다. 네 분이 시도때도
서로 오가며 친분을 쌓으셔서 그 모습을 보고자란
우리도 함께했다. 고모님, 고모부께서 조카 며느리
참하다며 아내를 많이 칭찬하셨다. 불과 얼마전에
고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이렇게 가셨다고
하니 먹먹했다. 9순의 그 연세에도 정정하셨는데
갑작스레 가시고 말았다. 지병도 없으시고 전날엔
마실도 다녀오셯다고 했다. 밤새 안녕이라는 옛말
그대로라고 할까? 가신 고모님께는 결례가 될지는
몰라도 지병으로 본인 고통은 물론 자식들 고생을
시키지도 않고 편히 가셨으니 어쩌면 요즘 흔히들
말하는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그 말, 웰다잉을 실천하고
떠나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조카였기에 고모님 영전에 무릎꿇고
앉아 향을 피우고 영면하시기를 마음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