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젊은 날의 추억 소환
2020년 12월 24일
음력 庚子年 동짓달 열흘날
이른 아침 기온 영상 3도, 영상의 기온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아마도 올겨울들어 처음인 것 같다.
어제 오후 2시쯤인가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해보니 영상 4도, 또 새벽에 눈소식이 있었다.
'허허~ 또 자동차를 놓고 올라가야겠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런 날 걸어서 집에 올라가면 아내가
걱정을 하곤 한다. '언제나 우린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살까?'하며... 속으로는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겉으로는 '겨울이면 일상인데 뭔 걱정인가? 운동도
하고 좋지 뭐~'라며 너스레로 아내를 안심시킨다.
모르겠다. 아내의 소원대로 눈이 내려도 걱정없는
그런 평지에 내려가 사는 날이 오려는지? 머잖아
제 2의 은퇴를 하고나면 아내의 이런 걱정이 없긴
하겠지만 그땐 그만큼 나이가 들어 또다른 걱정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자고나니 눈이
내린 흔적이 없다. 자정무렵 진눈깨비가 내리는 걸
보고 잤는데... 아내가 그러겠지? '다행이네!'라고...
어제 오후엔 회사에 설치된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전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대기를 하는
줄도 거리두기를 하였고 차례대로 안으로 들어가
잠시 코와 입에 면봉같은 것을 넣어 채취를 했다.
인근 스키장에서 확진자가 꽤 많이 발생하였으며,
오늘 12월 24일 0시부터 새해 1월 3일까지 모든
스키장이 폐쇄되고 콘도를 비롯한 모든 숙박시설
또한 50% 이내의 객실을 운영하며, 한 객실에는
5인 이상은 입실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와중인데
휴양지라고 놀러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거리두기 3단계보다 더 강한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강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인 것이다. 여행을 못해 죽은 조상이
있는가 보다. 대단한 배짱이고 대단한 깡다구다.
이러니까 아마 방역당국에서 전직원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차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한 것 아닌가
싶다. 결과는 오늘 오후쯤 개별 통보를 한다는데
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생 처음으로
이런 검사를 받으니 기분이 좀 그렇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종식이 되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아득한 옛날 젊은 시절을
추억해본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하심을
축하하는 경건해야 하는 날이지만 너도나도 모두
즐기는 축제와 같은 날이었다. 어느해 12월 24일
저녁무렵 화신백화점 뒷쪽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송아지다방'에 하나둘 모였다.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안은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했고 DJ박스에서는
연신 캐롤을 틀어주었다. 다들 모였다 싶으면 계란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시고 무작정 종각을
지나 명동으로 걸었다. 당시 명동엔 대형 백화점이
두 곳 있었는데 미도파백화점과 코스모스백화점이
마주보고 있었다. 그 일대는 인파로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명동성당쪽으로 향한 우리 일행은
인파에 떠밀려 거의 둥둥 떠다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거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별 볼일 없이
명동성당을 거쳐 중앙극장에서 꺾어 을지로, 다시
청계천을 지나 종로 2가 파고다공원 뒷쪽에서 종로
3가에 이르는 피맛골에 도착 선술집에서 저녁식사
겸 파전, 생선구이에 막걸리와 소주로 배를 채우며
추위를 달랬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겼다.
젊은 날의 호기였다. 뭐가 그리 좋다고 추운 거리를
활보하고 그다지 넉넉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호주머니를 털어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놀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그때 그렇게 함께 어울리며 즐겼던 친구들 중에는
이미 몇은 세상을 등졌고, 멀리 미국에 가서 소식
없는 친구, 촌부처럼 서울을 떠나 지방에 사는 친구,
정치판에 들어가 국회의원 하느라 바빠서 만나기도
힘든 친구와 몇몇 죽마고우가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경상도 촌놈들이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겁없이 활보하며 지냈던 그 옛날 젊은 날이 떠올라
미소를 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의 소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