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슬픈 날, 기쁜 날
2020년 11월 26일 음력 庚子年 시월 열이튿날
어제
11월 25일(음력 시월 열하룻날)은
슬픈 날이면서 기쁜 날이었다.
슬픈 사연은
작고하신 아버님 12주기 기일이었고
기쁜 사연은
생애 첫 국민연금을 수급하게 된 날이다.
슬픈 날,
누구나 꼭 두 번은 겪어야 하는 슬픈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는 것이다.
2008년 이맘때 나의 아버지는 77세의 일기로
우리들의 곁을 떠나 홀연히 머나먼 길을 가셨다.
그로부터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아버님 12주기 기일, 몇 해 전부터 집에서 지내는
기제사 대신 위패를 모셔둔 인천 용화선원에서
종교의식으로 모시고 있으나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되어
천도제에 참석을 못하고 실시간 동영상 시청으로
대신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송구스럽다.
내 아버지는 살아 생전 병원을 모르고 지내셨는데
결국 그것이 아버지 당신께서 서둘러 가신 원인이
되고보니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함이 더 아쉽다.
생전에 조금만 더 챙겨 종합검진도 받으시게 하고
몸에 좋다는 보약도 챙겨 드시게 했어야 했는데...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는
'늘 괜찮다, 상관없다, 병원 왜 가노?, 돈 아깝다,
돈 있으모 고기 사묵제!'라시며 고집을 피우셨다.
워낙 고집이 황소 고집이시라 어머님도 말리시지
못했다. 발병후 5개월만에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자식들에게 병수발같은 고생은 시키지는 않으셨다.
그 해 가을날, 아버님을 모시고 세검정 본가에서
풍납동에 있는 아산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던 날,
서울의 중심가 회현동 로타리에서 그만 자동차가
서버렸다. 하는 수 없이 자동차는 견인을 해 가고
택시로 병원까지 모셨다. 그 당시 타던 자동차는
뉴프린스였는데 워낙 노후되어 수리비가 중고차
값보다 더 나온다고 하여 폐차를 해야만 했었다.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견적을 받으며 검토를
하는데 아버님께서 "큰아야! 차 빨리 사야하제?
이거 얼마 안되는데 차 사는데 보태라."고 하시며
봉투를 주셨다. 다행히 기아자동차 영업소장으로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저렴하게 소렌토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차가 지금 타는 자동차이다. 이 차는
아버님 생전에 큰아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다. 이제 이 차도 12년이 되어서 얼마나
오래 타게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늘 아버님 생각을
하게 되는 소중한 나의 애마다.
기쁜 날,
지난 10월 주민등록상 나이가 만 62세가 되었다.
실제 나이보다 2년 2개월이 늦은 나이다. 우리들
또래는 이런 예가 꽤 흔하여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드디어 어제는 1988년부터 30년 가까이 부었던
국민연금을 첫 수급받은 날이다. 감회가 새롭기도
하면서 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에 기쁘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벌써 연금을 받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
격세지감(隔世之感)같은 느낌도 든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당시에 근무했던 광고회사, 그후
퇴직시까지 그런대로 부은 금액이 생각보다 많아
연금을 수급하는 금액도 수월찮은 금액이라 많이
기쁘다. 혹시나 공 돈이 생겼다고 엉뚱하게 쓰게
될까봐 은행에 나가서 입금되는 날 곧바로 아내의
계좌로 자동이체가 되도록 신청을 해놓았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전화를 하여 "당신 국민연금 나왔나봐! 내 계좌에
벌써 이체가 되었다고 문자가 왔네. 축하해요!"
라고 했다. 기분이 참 묘했다. 촌부 뿐만이 아니라
국민연금을 부었던 선배, 동년배들은 이미 촌부와
같은 이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기분이 참 좋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거늘 젊은 시절에
기왕이면 좀 더 많이 부어놓을 걸 하면서 부질없고
쓰잘데기 없는 욕심을 부린다. 이 정도 받게 된 걸
다행이고 복이라 여기며 감지덕지하고 오감타고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모두 많이 힘들어 하고
어려운 코로나19 시대에 이러한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국민연금을 받게 돼 너무나 흐뭇하고 좋다.
아내는 축하한다며 마들렌 반죽으로 머핀을 구워
진한 커피와 함께 야식으로 내놓았다.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아내의 정성과 고운 마음 같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고맙소!
오늘 아침도 여전히 영하 6도의 기온을 유지하는
산골이다. 바람이 잠잠하여 그다지 춥다는 느낌은
없다. 이제 서서히 추위에 익숙해지고 적응을 하는
것인가 보다. 하긴 예전에 비하면 많이 따뜻하다.
올해는 첫눈도 꽤 늦다. 지구온난화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