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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하지 말랬잖아!


2020년 11월 1일 음력 庚子年 구월 열엿샛날

어제 아침에 일을 나가는데 

아내가 "밭에 있는 채소를 어떻게 할까?"라고 하여

"배추만 뽑아놔! 나머지는 내가 와서 할게!"라고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배추만 뽑아놓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것도 꽤나

힘든 일인데...'라고 중얼거리면서 집에 도착했는데,

카페안에 아주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배추가 은박지

돗자리 위에 가지런하게 쭈욱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 봐라? 뽑아서 밭가에 두라고 했는데...'라며

카페안에 들어가 봤더니, 배추를 속이 꽉차고 통이

큰 것과 덜 찬 것을 구분하여 무우와 함께 정리해둔

것이었다. 위쪽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밭으로

가보았다. 이런이런, 배추밭에는 배추를 다듬고 남은

겉잎만 여기저기 널려있을뿐 훵했다. 다시 큰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우, 청갓, 쪽파 그리고 늦게 심어

무우가 들지않아 무청 김치를 담그기로 한 것과 역시

늦게 심어 나물로나 먹어야 할 것 같은 총각무도 모두

뽑아 밭가에서 다듬은 흔적이 눈에 띠었다.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내가 저만치 작은 밭가에서 손짓을 하며 큰소리로

왜 안들어 오고 밭에서 뭘 점검하고 있느냐고 했다.

아내를 보는 순간, 괜시리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하지 말랬잖아! 그런데 이게 다 뭣꼬? 괜찮아?"

라고 하면서 아내에게 다가가 봤더니 아내의 얼굴이

완전 붉은색이 아닌가? 하루종일 밖에서 많은 일을

했으니 가을 햇볕에 얼굴이 그을린 것처럼 보였다.

걱정스러워 "얼굴이 와 그라노? 어디 아푸나?"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하도 힘들고 피곤해서 당신 먹는

홍삼즙 한 팩 마셨더니 이렇게 얼굴이 달아오르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나니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었고 더 이상 일 많이 했다고 닥달해봐야

아내 기분만 상하게 할 것 같아서 꾹 참기로 했다. 

"그마 빨리 들어가자!"라고 하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현관에는 자잘한 무우청을 다듬느라 온통 난리였다.

결국 또 큰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만하고 다 갖다

버려, 그마! 힘들어 죽겠다면서 이기 뭐라꼬 이러고

있노, 말이다!"라고 했더니, 쎄빠지게 일하고 욕먹는

사람 표정이랄까? 아님 하도 기가 막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랄까? 그런 표정을 지으며 대꾸를 했다.

"당신이 애써서 기른 것인데 어떻게 갖다 버리냐?"

라고 하여 할 말이 없어 아내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평소에 늘 이런 대화가 오고가기 때문에 싸움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저녁을 먹으며 큰소리를  친 것이

미안하여 "이 사람아! 뭘 그리 힘들게 했노? 함께

하면 되잖아! 그러다가 몸살이라도 나모 우짤기고?"

라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내의 대답은 들으나마나

뻔히 익히 알고 있다. "당신 힘들게 일하고 와서 또

집일까지 하게 되면 더 힘들잖아! 그래서 하다보니

무리를 하고 말았지 뭐야!"라며 슬며시 웃어 넘겼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아내 말을 들어보니 더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생각은 마치 친정 엄마가 시집간 딸래미들을

챙기려는 마음과 같았다. 배추를 뽑아 밭에서 겉잎을

떼내 다듬었단다. 아우들에게 그냥 갖다주면 그 일은

또 아우들이 하게 될테니 기왕 주는 것 제대로 해서

주고 싶었단다. 무우는 뽑아서 청을 잘라서 시래기로

말리려고 널어놓았단다. 대파도 역시 아우들 힘들지

않게 깔끔히 손질을 해놓았다고 했다. 봉황의 뜻을

뱁새가 헤아리지 못하고 데데거렸네 싶어 미안했다.

그렇지만 촌부 생각은 '내 아내는 내가 지키고 내가

아껴야 하지않겠는가? 아내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내게는 가장 소중하니까!" 처제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간만에 날씨가 푹하다. 영상 7도의 기온으로

서리도 멈췄다. 땅바닥이 축축해 보이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간밤에 비를 조금 뿌린 듯하다. 어제 아내가 

올농사의 마지막 수확을 하였는데 참 잘한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밭설거지 뿐이다. 그것은 이 촌부가

마무리를 해야겠다.20201101_01085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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