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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백(白) 잣이 되기까지


2020년 10월 25일 음력 庚子年 구월 초아흐렛날

오늘 아침도 여전히 춥다. 어제 아침과 거의 비슷한

영하 4도, 얼음도 얼었고, 서리도 하얗게 내려앉았다.

비닐천막을 덮어놓은 가을 채소가 걱정이 되어 밭에

나가 살짝 천막을 들춰 살펴보았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 아무래도 김장을 서둘러야 하지않을까 싶다.


아내가 잣을 다 먹었다며 냉동보관했던 황(黃) 잣을

꺼내 난롯불앞에 펼쳐놓고 말렸다가 보늬를 벗겨서

한동안 우리가 먹게 될 백(白) 잣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잣송이 줍기부터 백 잣이 되기

까지 일련의 과정이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잣을 화두로 삼아본다.


지난 가을에 참으로 열심히 뒷산을 오르내렸다. 운동

삼아 잣송이도 주워오는 것을 겸해 오르내린 것이다.

산골에 산다는 것이 이런 재미이고, 이런 특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나브로 틈만나면 배낭을 짊어

지고 터덜터덜 뒷산 잣나무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쁠 것도 없으니 빨리 걸을 필요도 없다. 길이 없어

발걸음 닿는 그대로 아무곳으로나 다니는 것이지만

한번 두번 오르내리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난다.

사람의 발걸음이 참 무섭다. 안좋게 보게 되면 이게

바로 자연훼손이요,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잠시잠깐 지나다니가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을 거쳐 여름을 지나 다음해 가을 다시 오를 때는

원위치로 돌아와 있으니 큰 죄책감을 갖지는 않는다.


이렇게 주워다놓은 잣송이는 햇볕이 잘 드는 카페안

창가에서 어느 정도 말린다. 그래야 잣송이겉에 잔뜩

묻어있는 송진이 마르기 때문이다. 그래야 겉껍질을

까기가 수월하다. 예전에는 그런 방법을 몰라 곧바로

까느라 온통 송진 투성이가 되곤 했으나 해가 갈수록

차츰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다. 겉껍질을 벗기고 나서

잣송이를 비틀면 알갱이가 쏟아지듯 나오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이고 작은 포크나 드라이브와 같은 것으로

일일이 뽑아내면 딱딱한 알갱이 잣이 나온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잣 손질의 단계에서 쉬운 편에 속하는 것,

그 다음 단계가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것이다. 딱딱한

알갱이 잣을 하나하나 일일이 잣을 까는 도구를 사용

하여 까야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지루하여 아내는

겨울철에 틈이 나는대로 시나브로 하고 있다. 이렇게

딱딱한 껍질을 까서 나온 잣을 황(黃) 잣이라고 한다.

황색의 속껍질 보늬로 덮혀있는 잣알갱이를 말한다.

바로 먹을 잣은 보늬를 벗겨야 한다. 이 또한 알갱이

하나하나 일일이 벗겨야만 하는 수고로운 과정이다.


이렇게 보늬를 벗겨야 바로 우리가 고소하게 먹을 수

있는 맛좋은 백(白) 잣이 되는 것이다. 아내는 보늬가

덮혀있는 황 잣을 냉동보관을 해두고 그때그때 먹을

때마다 조금씩 벗겨서 먹는다. 확실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백 잣 상태로 까서 보관을 하면 잣 고유의

향이 많이 감소되는 것 같아 황 잣 상태로 냉동보관을

한단다. 이또한 아내의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잣 손질

노하우라고 할까? 잣송이를 주워오는 수고는 수고도

아니다.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 여러 단계의 수고로운

손질과정을 거쳐야만 하기에 아내는 물론이고 촌부도

텃밭농사에서 수확한 채소의 나눔을 하듯이는 못한다.

예전에는 주워온 잣송이를 수집상에 내다파는 것을

몰라서 모두 다 집에서 수작업으로 손질을 하여 양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조금씩 나눔을 하기도 했었으나

요즘은 잣송이를 주워와 어느 정도 양이 되면 곧바로

수집상에 내다팔고 튼실하고 알갱이가 꽉찬 큰 것을

골라 우리가 일년동안 먹을 만큼의 양만 조금 남겨서

말렸다가 손질을 하기 때문에 나눔까지는 못하기에

마음이 좀 그렇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전혀

나눔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못하기에...


우리는 떨어진 잣송이를 주워오지만 잣농사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높은 잣나무에 올라가 잣을 따야하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시중에서 백(白) 잣 값이

비싼 이유는 힘들게 따야 하는 수확과 여러 단계 손질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잣을 남들보다 많이 먹으며

살아가는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이또한 산골살이의

기쁨이고 특혜가 아니겠는가 싶다.IMG_20201025_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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