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앞뜨락 꽃대자르기
2020년 10월 23일 음력 庚子年 구월 초이렛날
오늘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다.
24절기 중 열여덟 번째에, 가을 절기로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상강은 서리가 내리는 시기라는
뜻이지만 이 산골은 이미 절기를 앞서 나가고 있다.
이미 오래전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고 요즘 거의 매일
된서리가 내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며칠전에는
이미 첫얼음이 얼었다. 상강 무렵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도 활짝 피는 계절로 늦가을에 해당된다.
농사력으로 보면 추수가 거의 마무리가 되는 때이다.
촌부네 텃밭농사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추는
이미 끝났다. 아직 밭에 서있는 고추나무는 그 사이에
된서리를 몇 번 맞더니 잎과 줄기가 마치 뜨거운 물에
데쳐놓은 모양새로 변해 버렸다. 세월이 정말 무섭다.
이제 남은 것은 콩과 가을 채소 몇 종류가 남아있다.
줄콩은 빨리 따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니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메주콩과 쥐눈이콩은 올해 또
망친 것 같다. 속상해 내년부터는 심지않을 생각이다.
가을 채소들인 배추, 무우, 청갓, 총각무, 대파, 쪽파는
좀 더 있다가 뽑아서 입동(立冬) 무렵에 김장을 하면
올해의 텃밭농사는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아니구나!
유종의 미를 거두는 밭설거지가 남았네. 땅이 얼기전
밭설거지를 하면 되니까 조금 시간이 있다.
추위가 한 열흘만 늦게 오면 좋겠구만 느닷없이 어제
올가을 들어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한 사나흘은
추울 것 같다고 한다. 하긴 이제는 추워지면 추워졌지
더 따뜻해지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그런 계절이다.
이 시기에 갑작스레 한파주의보가 내려지고 추워지면
가을 채소가 걱정된다. 배추는 그나마 추위를 견디게
되지만 무우는 뿌리가 얼면 바람이 들어 맛이 없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넓은 천막으로 덮어 보온을
해주었다. 애써서 기른 농작물인데 한파에 얼게 되면
그동안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는 것이니까 힘들어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추위가 한 열흘만
늦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서둘러 겨울채비를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겨울채비의 일환이기도 하면서 20년만에 앞뜨락을
재정비하는 기초작업이기도 하는 꽃대자르기를 했다.
아내는 꽃들의 자빠짐을 방지하고 아울러 더덕 같은
넝쿨식물의 유인줄 역할을 하게 하려고 설치를 했던
스키폴대를 뽑고 비닐노끈을 제거하는 일을 하였고,
촌부는 낫으로 일일이 꽃대를 깔끔하게 자르는 일을
했다. 일년에 한번씩 늦가을에 하는 일이지만 올해는
서둘러 조금 빨리 했다. 추위가 오기전에 모두 정비,
재설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야생초는 모두 파내고
화단을 꾸미고 데크를 설치하고 장독대도 옮기려고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20년 세월을 함께
했던 야생초는 캐내 분류하여 다른곳으로 옮겨 심을
생각이다. 올가을에는 이 정도까지 마무리를 해놓고
무슨 꽃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는 아내몫으로 남겨서
내년 봄에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일년에 한번
하던 앞뜨락 꽃대자르기도 올해가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째 기분이 묘하다. 야생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기도 하다. 초봄부터 이맘때 늦가을까지 온갖
야생초들의 새싹이 트는 것부터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며 관찰하는 것도
산골살이의 쏠쏠한 재미였는데...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내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20년간 지켜온 촌부의 끈질긴
고집스러움도 이제 꼬리를 내려야 하는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