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만약에, 또 아주 만약에...
10월 18일 음력 庚子年 구월 초이튿날
또다시 이른 아침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꽤 춥다.
이미 며칠전에 첫얼음이 얼었고 찬서리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하얗게 내려앉고 있다. 가을을 채 느끼기도
전에 추위 걱정부터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구나 싶다.
이 산골의 기후는 절기와는 사뭇 다르게 절기보다도
앞서가는 것 같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절기인
상강(霜降)이 닷새나 남았지만 이미 이곳 산골에는
서리는 물론이거니와 첫얼음에 이어 영하의 기온을
기록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주
특이한 기후를 가진 고장이 바로 촌부가 사는 평창의
봉평 산골이 아닌가 싶다. 불과 한 시간이내 거리의
인근 도시 원주와 대관령 넘어 강릉과 비교를 해봐도
전혀 다르니까 말이다. 이들 두 도시는 영서(嶺西)와
영동(嶺東)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그 사이에 평창이
있지만 기후조건은 두 도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거의 매일 뉴스 끝부분에 일기예보를 접한다.
지역을 분류하여 날씨를 예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원도를 영동(嶺東)과 영서(嶺西)로 구분하는 것은
백두대간(과거 태백산맥) 대관령과 미시령을 사이에
두고 동쪽 지역을 영동(嶺東), 반대쪽인 서쪽 지역을
영서(嶺西)라고 한다. 촌부가 사는 곳인 영서지역은
원주를 중심으로 하여 평창, 영월, 정선, 횡성, 홍천을
영서남부라고 하며, 춘천을 중심으로 하여 화천, 철원,
양구, 인제를 영서북부라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이가 심하고, 영서 남부와 영서
북부의 기후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때
그것은 동과 서, 남과 북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촌부가 살고 있는 고장 평창은 평균 해발이 700m로
다른 고장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기후조건은 해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촌부의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날씨인데 그만큼
다른 고장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지금처럼 거의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
춥고 심지어 5월 중순까지 서리가 내린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일년 중 겨울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세 계절이 절반을 나누게 되어 봄, 여름, 가을이 짧다.
솔직히 20년전 이런 기후조건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도 이곳으로 삶터를 옮겨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20년을
살다보니 날씨로 인하여 웃지못할 일들을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오고 있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하게 되는 것이고 살아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아내와 둘이서 이런 꿈도 꾸곤한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이곳 봉평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또 아주 만약에
봉평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잠재된 생각대로 저멀리 촌부가 태어난 곳
따뜻한 남해 부근의 해안지방에 한번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실현 가능성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내가 그랬다.
산골에서 20년을 살아봤으니 이제는 바다가 가까운
따뜻한 지방에서 살며 어시장에 나가 생선을 사다가
집에서 말려놓고 먹을 수가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산골 아낙의 꿈이기는 하다.
아마도 겨울이 너무 긴 산중턱에 자리한 이 산골에서
20년을 지내오며 힘겹게 눈을 치우는 일에 이골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 계절이 우리들의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산골의 겨울이 겁나고 무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