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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푸른詩 100선" 발간을 祝賀하며...


10월 16일 음력 庚子年 팔월 그믐날

이른 아침 기온 영하 2도, 춥다! 첫 얼음이 얼었다.

어제보다 더 서리의 강도가 세다. 바로 된서리다.

지붕위는 하얗고 밭에 있는 배추와 무우도 얼었다.

고춧잎은 폭삭이다. 끝물 고추 적절하게 참 잘 땄다.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은근 걱정이 되네.


푸른문학회에서 해마다 소속 문인들의 작품을 엮어

<우리들이 사랑하는 '푸른詩 100선'>을 발간하여

오고 있다. 2020년 이번에 제4호가 발간이 되어서

교보문고를 비롯한 서점에 선을 보였다. 푸른문학과

동행을 하는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할 일이다.

이번 제4호에는 푸른문학 소속 시인, 수필가 55인의

주옥같은 작품들로 알차게 꾸며져 있어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며 사랑받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계간으로 발간을 하는 순수문예지 '푸른문학'

또한 문학계에서는 입소문과 칭찬이 자자한 우수한

문예지로 정평이 나있어 문학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혜의 마중물, 문단의 새바람"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책으로 여는 세상"을 추구하는 푸른문학사에서 어언

5년에 걸쳐 열아홉 권째 계간으로 발간해 오고 있는

순수 문예지가 바로 <푸른문학>이다. 2016 봄호를

창간호로 하여 발간한 이후 꾸준히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하고 공헌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푸른문학은

시인이며 에세이스트이신 이은별 대표와 시인이며

수필가이신 임재구 부대표를 중심으로 하여 그동안

푸른문학을 통해 배출된 많은 문학인들이 문단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푸른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을 한

촌부는 '푸른詩 100선' 제2호, 제3호에 이어 이번

제4호에도 참여를 하였다. 등단 이후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애송이 수필가라서 버젓한 자기 수필집 하나

내지못한 문학인이지만 이따금씩 '푸른문학'에 참여

하여 수필을 기고하고, 매년 '푸른詩 100선'에 공저

(共著)로 참여하고 있다.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촌부의 단상은 이번에 발간된

'푸른詩 100선'에 기고한 수필로 대신한다.


푸른詩 100선(우리들이 사랑하는)(푸른문학회 시 

수필선 4) - 교보문고 -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91188424405?orderClick=Ow2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의 아픔들


아직 장가를 들지않고 혼자 도시에 사는 마흔 살이나

먹은 아들 녀석이 지엄마에게 전화를 하여 둘이 통화

하는 것을 멀찌감치에서 들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

놓은 것이 아니라서 아들 녀석의 대화 내용은 아내의

말을 듣는 걸로 대충 알 것 같았다. 둘의 통화 내용은

이랬다. 코로나19 재창궐로 인하여 하는 일이 꽤나

힘든 것 같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으로 인하여 대면 수업은 못하고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어 이래저래 고충이 많은 모양이었다.

지금의 추이라면 다가오는 추석 명절에도 집에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것이다. 달랑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인데 평상시도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명절에도 못보게 되는 이런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다는 아내를 바라보는 이

촌부의 마음도 짠했다. 보고싶은 마음을 감추며 너무

개의치 말고 늘 건강 조심하라는 당부로 마무리하는

아내의 아들 사랑하는 마음이 몹시 안타깝게 보였다. 


살다살다 이런 난리를 겪어 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가 겪는 또 하나 아픔이

있다. 올해 연세가 87세이신 장모님에 관한 아픔이다.

몇 해 전부터 경증 치매를 앓아오시다가 지난해부터

상태가 여의치가 않아 치매등급을 받고 인근 요양원

주간센터에 다니시기도 했지만 적응을 못하시기에

아내와 함께 마음 고생을 좀 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아내의 4남매도 모두 다 그랬다. 설상가상이라더니

하나뿐인 처남이 불치의 병으로 인해 세상을 등졌다.

우리의 충격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데 자나깨나

아들만 생각하시던 장모님께서는 병환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사랑하며 아끼던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무듬듬하게 잠시 눈물을 흘리시다

이내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정상적이었다면 아마도

실신을 하셨을텐데... 그러한 장모님을 보는 우리는

또한번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상태는 갈수록 더욱

더 심해지셔서 결국 우리가 보살펴 드리는 것보다도

전문 시설을 찾아서 모셔야 한다는 형제들과 합의를

통해 이곳저곳 마땅한 시설을 찾아보다가 인근 도시

원주에 있는 요양원에 모셨다. 다들 요즘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우리

부부의 마음은 그런게 아니었다.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을 한 그날 이후는 물론이고 모시고 갔던 그날도

요양원을 나오면서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그날이 지난 1월 20일이다. 지독하게 아픈 마음으로


장모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나오는데 때마침 독감이

유행을 하여 한동안은 절대로 면회가 안된다고 했다.

설상가상 그 무렵에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외출은 물론이고 면회까지 금지가 되어 우린

한동안 마음 고생을 했다. 겨우 잘 계시냐는 전화를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용품이 필요하면 요양원 현관

앞에 갖다놓고 오는 것 외는 어쩔 수가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흘러 영상통화도 하고 비대면 면회를 할 수

있었는데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까지 간

코로나19의 재창궐로 인하여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이 되어야 자유롭게

찾아가 면회도 하고 외출을 할 수가 있을까? 


이런 아픔을 겪게 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정부와 방역당국과 국민들은 전세계가

놀랄 만큼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노력이 대단했다.

그런 노력에 세계가 놀라고 극찬을 하였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몇몇 종교 집단들과 극우 보수단체들과

일부 정치권에서는 협조는 못할망정 어깃장을 놓으며

사태의 진정에 찬물을 끼얹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도 모자라 더 심하게 휘발유를 뿌리는 듯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

코로나19 창궐의 시발점이었던 대구 신천지 교회의

이만희인가 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작자와 그를

따르는 많은 교인들의 무분별한 행동과 난동을 부려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이 되었고 한동안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와 지자체와

방역당국과 수많은 의료진의 끈질긴 노력과 더불어

대구시민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하여 진정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뭉치는 힘은 대단했다. 봉사정신이

엄청 투철한 수많은 의료진들이 대구로 내려가 밤낮

없이 헌신했고 방역당국과 함께 국민들도 방역수칙을

잘 지켜 겨우 진정을 시켰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단합된 힘이었다. 이렇게 진정이 되기까지는

정부와 지자체, 방역당국, 의료진 그리고 일상생활의

불편은 물론이고 아픔까지 감내하며 견딘 국민들의

협조와 노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얼마전 국경일인 8.15 광복절에 성직자라고

하기도 싫은 전광훈인가 하는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그를 따르는 몰지각한 많은 사람들과 태극기 부대, 

엄마 부대라고 하는 이들과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함께 참석하여 불법 시위를 벌이며 난동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되어 코로나19 재창궐의 시발점이 되었다.

진정이 되는구나 싶었던 바이러스의 확산은 온사방

다시 퍼져나갔고 정부와 지자체, 방역당국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까지 시행을 하는 심각한

단계까지 이르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者들의 속성은 너무 한심하다.

그런 者들의 머리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길래

국민들의 지탄을 받으며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런 者들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 함께하는 것은 또하나의 우리들

모두가 겪지않아도 되는 아픔이 아니겠는가 싶다.


동족상잔의 아픔이었던 6.25사변을 겪은 세대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오죽하면

'6.25 이후 이런 난리는 처음이여!'라고 하기도 하고

'6.25 난리는 난리도 아녀!'라는 말까지 하였을까?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너무나 힘든 사람이 수없이 생겼다. 소상공인은

버티고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에 이르고

직장인들은 무급휴가라는 극단적인 단계까지 내몰려

아픔을 감내해야만 했다. 지나간 IMF 외환위기 때를

상기해봤지만 그때보다도 훨씬 심한 극한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되었으며

또다시 소상공인 위주로 제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하는 사태까지 몰고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지난 3~5월 세 차려에 이어 9월에 또다시 열흘간의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그나마 일을 하는 것 만으로

만족하며 수입의 감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군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이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모두들 이 상황의 극복을 위해 아픔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걱정이다.

종식이 되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을까?

아마 이번 사태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싶다. 사회적인 활동을 자제하게

되고 가족 중심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활발한 사회활동이 있어야만 모든 분야가 

균형있게 발전을 하게 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코로나19의 빠른 종식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정부와 지자체는 나라 경제의 위축을 방지하는 정책을

펴야할 것이며,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 앞서 민생을

먼저 걱정하는 법안들을 수립해야 할 것이고, 법조계는

코로나19사태의 진정에 찬물을 끼얹는 자들을 색출해

엄벌에 처해야 하며, 경제인들은 나라 경제의 손실을

최소하는 정책으로 국민을 안심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도 정부나 지자체, 방역당국의 안전 수칙을 잘

준수하고 협조하여 코로나19 조기 종식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어야 하지않겠는가? 이 사태를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일찍 종식시키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20201016_0701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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