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가을 채소
10월 4일, 음력 庚子年 팔월 열여드렛날
개천절(開天節)인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국경일이면 태극기를 집앞에 내다 걸었는데
비가 내리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일년에
겨우 몇 번 게양하는 것인데 비가 온다고 하여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현관 데크에는 지붕이 있어 비가
들이치지 않으니 궁여지책으로 현관 안쪽에 세웠다.
애국자는 아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개천절(開天節)은 단군 임금님께서 하늘을 열어서
단군조선을 개국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서 글자
그대로를 풀이하면 '하늘을 연 날'이 되는데 바로 그
날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하늘이 열리고 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엉뚱한 촌부의 억지춘양식 비유를
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개천절에 비가 내려
반가운 마음이라 하늘이 열려 비가 내린다는 표현을
해보았다.
지난 여름 긴 장마철에는 비가 자주 내렸지만 가을로
접어들면서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가을 가뭄이
제법 심했기에 비가 내리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며칠전 마을 아우가 배추를 비롯한 가을 채소를 살펴
보더니 물부족 현상이라고 하여 지난 여름에 거두어
놓은 호스를 꺼내고 연결하여 가을 채소들에게 물을
주었다. 이제 비가 내려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가을 채소도 좋을테고 덩달아 이 촌부도 좋다.
비내리는 것이 마음 한 켠 걸리는 것도 없잖아 있다.
익어가고, 익어야 할 고추와 콩은 요즘 내리는 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조금 늦게
더디게 익을지라도 괜찮지만 가을 채소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빗물이기 때문에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어제는 소금장수 부모의 심정을 떠나 우산장수 부모
심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라 비를 반겼다.
우의를 입고 빗물을 머금어 좋아하는 가을 채소들을
살펴보았다. 지난번 물을 흠뻑 주고나서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는데 이번 비로 인하여 더 한층 튼실해지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비가 고맙다.
모두가 이젠 제대로 제 모습을 찾은 듯하다. 앞으로
성장을 하게 될 시간은 그다지 많지않다. 이 산골의
가을은 길면 한 달 정도이고, 짧으면 3주가량 남았다.
그래서 가을 채소들은 추위가 오기전에 모든 성장을
해야한다. 빗물을 흠뻑 머금었으니 지금부터는 가을
햇볕 받아 무럭무럭 잘 자라게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배추는 통통하게, 무우는 튼실하게, 총각무를 비롯한
청갓. 대파. 쪽파는 쑥쑥 예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