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촌부의 한가위 명절은...
10월 2일, 음력 庚子年 팔월 열엿샛날
역시 세월의 흐름은 물론이고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는 것 같다. 어느새 이른 아침은 공기가 차다. 이제
아침.저녁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겉옷을 챙겨입고
산을 오르게 된다. 또 이렇게 한 계절을 보내고 다른
계절을 하나 더 맞이하게 되는구나 싶어 조바심까지
나게 된다. 가는 세월, 오는 계절은 부인할 수가 없는
자연스런 것이지만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런 엉뚱한
생각이 더 들곤 한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면 많이
약해지는 마음이라서 그런 것이겠지? 애써 태연한
척을 해보지만 터덜터덜 혼자서 길도 없는 뒷산으로
향하여 걷다보면 그날그날 새로운 생각들이 촌부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마음을 붙잡기도 한다. 가을은
가을에 태어난 촌부의 고향같은 계절이라서 느낌이
남다른 것일까?
올해 추석 명절은 아들 녀석이 내려와 함께 해주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자리하였다. 아마도 가장 큰 어르신인 장모님이 집에
계시지않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뿐만이 아니라
밖에 나가 사는 산골식구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오지못한 것도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양가의 세 분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장모님 한 분만 계시긴 하지만
사실상 양가의 수장이 된지도 어언 3년째 접어든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얽혀있어 촌부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책임감에 이따금씩 눈물을 머금기도 한다.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네 삶이, 우리네
일상이 그렇게 마음먹은 그대로 되지를 않으니 더욱
더 그런 약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럴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맏이로서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며 다짐을 하고 또 하게 된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부모든, 자식이든지, 형제든지,
친척.친지나 친구든지 만날 때는 좋지만 헤어질 때는
마음이 참 허전해진다. 특히 자식이 집에 왔다갈 때는
더 그런 느낌이 많아지는 것 같다. 간소하게 차례를
지냈다. 아내는 햅쌀을 사다가 밥을 짓고 정성껏 만든
음식을 몇 가지 올렸다. 부모님 두 분이야 어느 정도
명을 다하시고 가셨지만 지난해 봄에 훌연히 가버린
둘째 여동생 밥까지 올리다보니 마음이 더 울적했다.
제수용 술은 고향 남해 다랭이 마을 이창남 향우님이
보내주신 다랭이팜 생막걸리를 올렸다. 간만에 고향
술을 올리게 되어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셨겠지 싶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단란한 산골가족 차례는 이렇게
끝났다.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한 아내는 연신
많이 먹으라며 아들에게 말을 시켰다. 문득 그 옛날
어머님께서 그러셨던 기억이 스쳤다. 이제 아내가 그
당시 어머님의 나이가 되어 이러고 있구나 싶어 짠한
마음이었다. 이렇게 한가위 명절 차례를 지내고 나서
아들은 다시 도시의 삶터로 올라갔다. 아들이 와있던
이틀간 싱글벙글하던 아내 모습은 아들을 배웅하며
다시 허전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바뀐 것
같았다. 여느 부모가 다 그렇듯이... 아내는 허전함을
달래며 사흘전에 따서 카페안에 숙성시켜놓은 붉은
고추 꼭다리를 따서 건조기에 넣었단다.
아들을 배웅하고 촌부는 일터로 향했다. 명절이라고
쉴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쉴때가 더
바쁜 직업이라 어쩔 수가 없다. 명절, 연휴, 국경일,
휴일, 주말이 더 바쁘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일을 할 수 있게 해줌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추석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기쁜 마음으로 일터로 향했다.
아내가 그랬다. "명절인데 일을 나가는 것이 짠하네.
그래도 당신이 일을 할 수가 있어 너무너무 고마워!
수고해요. 화이팅~~"이라고 하는 격려에 힘이 났다.
매일 촌부 일기를 보는 어릴적 고향 친구, 50년동안
우정을 이어오는 죽마고우(竹馬故友)의 댓글 또한
힘이 난다. "이용식 친구야! 우리 나이에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네.ㅎㅎ" 친구의 말이 맞다! 이 나이에
일이 있고 일을 할 수 있음은 커다란 복이요, 행복인
것이니까 말이다. 고마운 마음에 "친구야! 고마워~"
라고 답글을 달아놓았다.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서울에 있는 고교동창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그 친구 또한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나갔다고
하면서 "놀면 뭐하냐? 집에 있으면 술이나 마시고
있을텐데... 나는 쉬는 사람들을 위해, 자네는 쉬러온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니 보람된 것 아니겠어?"
라고 하는 말 또한 아주 큰 힘이 된다. 올해 촌부의
한가위 명절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