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아쉬움을 뒤로하고
9월 15일, 음력 庚子年 칠월 스무여드렛날
이른 아침 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배낭, 장화, 스틱,
마대부대, 호루라기에다 물까지... 딱 일년만에 다시
챙겨보는 촌부의 산행 장비들이다. 떨어진 잣송이를
주우러 뒷산 잣나무숲에 갈때마다 이렇게 준비한다.
올해는 과연 잣이 얼마나 많이 열렸을까? 청설모가
잣을 따서 풀섶에 얼마나 많이 남겼을까? 궁금했다.
해마다 이맘때쯤 옆산과 뒷산 두 군데 잣나무숲을
찾는다. 한군데는 집에서 가깝고 한 곳은 얕은 언덕
지나서 있는 꽤 넓은 잣나무숲이다. 먼저 옆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잣송이를 찾아나선 올해 첫 산행,
설레는 마음이었다. 잣나무숲에 들어서자마자 이내
청설모가 잣송이 겉껍질을 벗긴 흔적에다 알맹이를
빼먹고 남긴 빈잣송이가 보인다. 이제 시작이구나!
그때서야 잣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실감하는 촌부는
눈을 부릅뜨고 스틱으로 여기저기 풀섶을 뒤진다.
드디어 잣송이 발견, 잣송이가 여느해에 비해 작다.
그래도 몇 송이를 주워 배낭에 담았다. 아직은 이른
시기인지 그다지 떨어진 잣송이가 많지는 않은 것,
다시 발걸음을 옮겨 다소 먼곳에 위치한 잣나무숲을
찾았다. 여기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다지 잣송이가
많지는 않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을 상기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왔다.
모처럼의 아침 산행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옆집 사장이 전화를 했다. 옆집이지만 별로 내왕이
없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영 딴판이라서... 다만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통행을
하는 길에 관한 것 뿐이다. 왜 전화를 했는가 했더니
올라오는 길 양쪽 무성하게 자라 볼상 사나운 것을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이번 휴가기간에
베어야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두 집이 서로 미룬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생각은 옆집이 영업을 하고 있어
당연히 정리하겠지 했는데 그건 우리 생각 뿐이구나
싶다. 사실 예전에 영업을 할 때는 해마다 우리가 다
정리를 했기에 그런 생각이었는데 옆집 생각은 다른
것 같다. 하긴 공동의 길이니까 함께 정리하는 것이
맞다. 예초기를 짊어지고 길을 따라 내려가며 풀을
자르고 있는데 옆집에서 나왔다. 풀 베자면서 달랑
낫 한 자루 들고 나오다니... 몸이 좀 불편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며 혼자서 양쪽을 다 잘랐다. 낫으로
뒷정리를 하더니 진입로 초입까지 내려갔다가 오니
그새 들어가고 없다. 예초기 소리가 나 올라와보니
예초기를 짊어지고 자기네 집의 풀을 깎고 있는 것
아닌가? 순간, 부화가 치밀었지만 길 정리는 했으니
참기로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음을 달랬다.
이제 계절은 수확과 정리의 계절이다. 봄날에 심어
여름을 거쳐 지금껏 꽤나 많이 따서 먹었던 노각과
방울토마토 마지막 수확을 하고 넝쿨을 걷어냈다.
올해 텃밭농사는 날씨 조건에 비해 잘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생각보다는
풍작이었다. 특히 방울토마토는 예상외로 좋았다.
여름 내내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나눔도 많이 했다.
또한 노각도 올해처럼 많이 수확을 해본적이 없을
만큼이다. 아내가 노각 저장법을 생각해내서 꽤나
많이 냉동보관을 해두었으니 이 또한 큰 수확이다.
혼자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결국 아내가 나와
도와주어 일이 빨리 끝났다. 남은 노각, 방울토마토
마지막 수확을 하고나서 지지대, 유인줄로 묶었던
고추끈과 그물망을 제거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봄날에 세우고 묶고 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정리를
하다보니 꽤나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렇게 하나 둘 정리를 하다보면 한창 수확을 하던
때의 생각보다 아쉬움과 허전함이 더 많이 생긴다.
이 또한 과한 욕심이고 미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년을 기약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하루였지만 그렇다고 아쉬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읍내 은행에 다녀오며 아내가
제과점에 들리자고 했다. 집에서 먹을 빵을 사려고
하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마을 아우네에 갖다주고
오려고 사는 것이란다. 그동안 여러가지로 고맙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밥을 먹자고 해도 바쁘단
핑계로 사양하여 딱히 뭘 줄 것도 없다며 빵이라도
조금 사다주어야 마음이 편하는 아내의 생각이었다.
아우네 갔더니 부부가 집에 없어 사방을 둘러보니
마을앞쪽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밭으로 가서 감자 줍는 걸 조금 도와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품가치가 없는 감자가 너무
아깝다며 제수氏와 아내가 줍길래 함께 꽤 주웠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 이상이 없는 좋은 것을 상당히
많이 얻어온 것이다. 저녁에 감자전을 했는데 아주
맛이 좋았다. 좋은 일도 하고 모처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감자도 얻어왔으니 마무리를 잘하여
좋다. 이래저래 서운한 마음을 뒤로해야 했었는데...